김대중 정부에 들어서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을 투자하여 실시하고 있는 사업으로 주민자치센터를 들 수 있다. 동사무소와 읍 면 사무소를 전환하여 주민편의와 복리를 증진시키고 주민자치기능을 강화하여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도록 한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중앙정부차원에서는 시범사업을 위하여 수백억원의 돈을 투자하였으며 지방정부도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하여 읍 ·면 ·동사무소를 개축 혹은 단장하여 주민자치센터를 운용하고 있다. 1999년에 시범사업으로 도입된 이래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주민자치센터 및 그 운용을 위한 주민자치센터의 모습과 활동은 전국적으로 대부분 천편일률적 이다. 주민자치센터가 졸속으로 꾸미다 보니 교양이나 취미 프로그램운용에 급급하였고, 행정청 특유의 실적위주로 운영되다보니 이용주민의 숫자를 채우는데 급급하였다.
 예컨대, 외국어강좌, 컴퓨터강좌 등은 물론 심지어는 노래교실, 스포츠댄스, 마사지, 비디오방 등등을 교육하거나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강좌나 시설은 민간에 의하여 이미 영업적으로 제공되고 있거나 구민회관, 각종 문화 및 복지회관, 사회교육기관, 각종 사회단체 등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사람이라도 주민이 원하면 그 요구에 부응해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나 정부의 일에는 우선 순위가 있고 정부와 민간사이에는 역할 분담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제공하는 것이니 값이 쌀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국 시민이 내는 세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관한 납세자권리의 문제로 환원된다. 빈곤상태에 허덕이는 지방정부에서 과연 주민의 세금을 일부의 주민이 이용하는 교양프로그램의 운용에 투자할 정도로 우선 순위를 갖는지, 보다 절실한 문제는 없는지에 주민들이 결정해야 한다. 또한 민간과 정부의 역할분담에 있어서도 정부는 민간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만 관여함이 원칙이다. 민간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정의의 원칙에 어긋나며 정부의 존립목적과 부합되지 아니한다. 이 점에서 주민자치센터에서 제공하는 각종 프로그램은 전면적으로 검토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과연 모든 읍· 면 ·동에서 현재와 같은 주민자치센터를 운영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자치센터에 의한 일방적인 서비스 제공은 주민의 자치의지를 오히려 약화시키고 주민에 행정에 대한 의존을 더 높여 주민을 타락 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즉, 주민이 공동체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높여주는데 기여하기보다는 정부에 대하여 끊임없이 요구하도록 하는 의존성을 높여 오히려 공동체정신을 오염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주민의 자치정신, 공동체의식,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향토애를 함양하는 주민자치의 방향은 주민이 행정서비스의 소비자가 아니라 주민이 공동체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데 있다. 예컨대, 동네에 위험한 곳을 조사하고 정비하는 일, 통학로의 안전을 강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 지저분하고 악취나는 곳을 정화하기, 골목정비, 동네공원 가꾸기, 나무심기, 지역노인 보살피기 등 주민이 할 일을 찾자면 지역마다 매우 다양할 것이다. 이들 일을 하나 하나 두고 보면 작은 일 일지도 모르지만 주민들이 모여 의논을 해서 문제를 처리한다는 그 자체로서 공동체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늘날 필요한 정치는 바로 우리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정치가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고 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는 일을 정부가 관여하기 이전에 주민이 스스로 해결해내는 것에 바로 주민자치의 본질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주민자치는 일차적으로 정부가 관여하기 이전의 단계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의 경우 주민의 편익과 복지사업을 수행하는 코뮤니티 센터는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수행한다. 우리와 같이 정부가 나서서 사회공동체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것은 자칫하면 ‘주민없는 주민자치’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주민이 혼자서는 해결하기 없는 일을 이웃과 함께 스스로 해결하도록 나서는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주민자치의 모습을 본다. 우리의 생활문제를 누군가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주민들이 나서서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주민자치의 본질이고 생활정치의 모습이다. 이점에서 현재의 주민자치센터 운영은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되어야 하며, 그 주된 역할을 주민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주민자치센터를 획일적으로 강행한 것은 김대중 정부의 반자치적 지방정책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중앙정부의 실책을 바로잡아 생활정치를 회복하는 것도 주민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