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민간인통제선 사이에 있는 마을을 민통선마을 혹은 민북마을이라 부른다. 민통선마을의 효시는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 대성동마을(자유의 마을)이다. 대성동마을은 정전협정의 규정에 따라 마을 살림살이가 허용되었다. 정접협상에서 군사분계선 인근에 남과 북 각기 1곳 씩 마을을 두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사람 사는 마을이 있으면 우발적 무력충돌 가능성을 낮출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발상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따라 북에서도 기정동마을을 두었다.

두 마을 외에도, 전쟁 전 비무장지대 인근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던 주민들은 살벌한 군사적 긴장 속에서도 고향에 돌아가 농사짓고 살고 싶어 했다. 미군은 1954년 귀농선(歸農線)이라는 선을 설정했다. 말 그대로 출입영농을 허용하는 경계선이라는 의미다. 초소에서 군부대의 허락을 받으면 들어가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이 귀농선이 오늘날 민간인통제선의 시작이다. 그런데, 출입영농만이 아니라 전쟁 전 촌락으로 들어가 살기를 원하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귀농선 관리가 실질적으로 미군에서 한국군으로 넘어오게 되면서, 1954년 11월 연천군 백학면 11개리의 입주가 처음으로 허용됐다. 이렇게 부활한 마을을 자립안정촌이라 부른다.

경기도의 자립안정촌은 1950년대에 36곳, 1960년대에 14곳, 1980년대에 2곳 등 총 52곳이 형성되었다. 시군별로 보면 연천군이 5개면 29곳, 김포시가 2개면 14곳, 파주시가 1읍·3면 12곳이다.

1960년대 후반 들어 정부는 자랍안정촌 외에 북쪽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지역에 전략적으로 마을을 조성해 체제 우월성을 과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마을을 재건촌이라 부른다.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를 비롯해 강원에 8곳, 경기도에 2곳(연천군 왕징면 북삼리와 연천군 백학면 석장리)이 건설됐다.

1972년에는 재건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강원도에 1곳(철원군 근북면 유곡리), 경기도에 1곳(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새로운 마을을 만들고, 통일촌이라 명명했다. 통일촌은 제대군인, 실향민 가운데 희망자를 선발해 입주하도록 했다. 농지를 소유할 수는 없고 경작권만 주었다. 최전방마을답게 주민들은 농사를 짓는 한편 유사시 군사 임무도 부여받았다. 백연리는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4.5㎞ 떨어져 있다. 통일촌 주민들은 지뢰 제거 전문가와 짝을 이뤄 황무지를 개간하고, 장단콩의 명성을 이어왔다. 통일촌이 이번 주에 마을 조성 50주년을 맞았다. 여전히 허가를 받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이제 몇 남지 않은 민통선마을 가운데 한 곳인 백연리 통일촌에는 170여가구 400여명이 산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