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은 1992년 8월24일 40년 단절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적대국 관계를 청산했다.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는 셈이다. 끊긴 역사를 다시 이은 양국의 변화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수교를 계기로 바닷길과 하늘길도 활짝 열려 교류를 도왔다. 통상과 물류 등 경제 분야를 핵심축으로 물꼬를 튼 각계의 흐름은 양국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 수교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치·외교적 구도를 송두리째 뒤흔들며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여론이었다.

30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30년을 나이로 치면 '이립(而立)'이다. 지난해 9월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한 얘기이기도 하다. 그는 “내년이 중한 수교 30주년인데, 공자(孔子)는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서른 살이면 흔들리지 않는 뜻을 세우고, 마음이 확고해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한·중 간 우호가 한층 더 성숙해져 어떤 풍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기를 기원했다고 여겨진다.

한·중 수교 30년 역사에서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인천은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다. 국내에서 중국과 가장 활발한 교류를 하는 곳이 인천이다. 인천에선 수교 이태 전에 이미 한·중 카페리를 띄워 수교를 앞당기게 했다. 골든브리지호는 1990년 9월15일 오후 인천항을 출발해 중국 산둥성 위해항으로 역사적인 첫 취항길에 올랐다. 골든브리지호는 인천∼위해 간 주 2항차 운항을 했다. 인천일보는 때맞춰 여느 언론사보다 먼저 기자들을 중국에 급파했다. 그리고 기자들이 작성한 '중국 위해에서'란 르뽀기사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 수교 30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여러 문제에서 서로 협력하기도 했지만, 또 어떨 때는 의견 불일치로 티격태격한 게 사실이다. 중국의 한 학자는 한·중 관계를 놓고 “역사가 가깝고 문화가 가까우며, 지리도 가깝고 감정도 가깝다(歷史近 文化近 地利近 感情近)”고 했다. 그렇다곤 해도 관계가 늘 순조로울 수만은 없다. 어찌 양국이 항상 순탄한 여정을 구가하겠는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 잘 흐르도록 해야 할 터이다. 오로지 '슬기롭게' 헤쳐나가길 바랄 뿐이다.

현재 중국엔 한국인 30만여명이, 국내엔 중국인 83만여명이 장기 거주한다. 그만큼 이주와 이민이 활발했다는 얘기다. 이민자와 원주민이 상호 협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한·중 수교 30년을 맞아 두 나라 사이에 사람과 물자가 한층 더 오가며 더불어 살아갈 궁리를 펼쳤으면 한다.

▲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