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처럼 밝고 아름다운 18개의 별빛

이야기는 힘이 세다. 이야기가 화자의 진솔한 삶을 담고 있을 때 그 힘은 배가 된다. 우리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사람마다 똑같은 삶은 없다. 그 삶은 역사가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타인의 곡진한 삶을 담아내는 글은 더욱 그렇다. 인터뷰는 삶과 삶의 합작품이다. 인터뷰 대상이 전면에 드러나지만 그 결과물은 인터뷰하는 사람의 세계관이 반영된다. 다른 이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것을 글로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글쓴이가 준비한 만큼 인터뷰이의 삶을 제대로 글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글 중에 인터뷰 글이 어려운 이유이다. 은유 작가는 그 어려운 것을 해낸다.

은유의 <크게 그린 사람>은 2020년부터 일간지에 연재된 '은유의 연결'에서부터 시작된다. 연재를 통해 만난 16인에 다른 매체에서 함께한 2인을 더해 새롭게 엮은 인터뷰집이다. 은유의 만남은 그 폭이 넓고 깊다. 인권기록활동가, 청년예술가, 경찰, 자연주의자, 의사, 가수, 소설가, 시인, 만화가, 정치인, 아나운서, 기업인, 노동운동가 등, 그가 만난 사람들이다. 그들이 살아온 경험들, 생각들, 감정들에서 형성된 것들이 삶의 얼굴을 만든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분야의 다양한 삶과 시선을 가진 인터뷰이의 이야기들은 이해와 공감의 전달자 은유를 통해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그 질문이 반갑다. 그냥 살아내는 삶이 아닌,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은유는 인터뷰가 사람의 크기를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시간이 없어서, 혹은 너무 멀거나, 또는 너무 가까워서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생각보다 세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아간다. 이런저런 이유로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좋은 인터뷰는 안 보이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잘 보이던 사람을 낯설게 한다. 인터뷰이로 어떤 대상을 택하고 어느 부분을 어떻게 도드라지게 할 것인가, 이것은 전적으로 인터뷰어의 세계관과 미학에 따른다. 은유가 만난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종착점엔 은유가 남아 있다.

모두가 쳐다보는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사유를 자극하는 사람들.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의 근거가 되어주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 자체가 모두의 해방에 기여하는 사람들. 은유는 이런 사람들을 크게 그리고 싶었다. 이 책에 담긴 18명의 인터뷰는 그들의 증명사진이 아니다. 어떤 한 사람, 그 사람 은유가 크게 그린 그림이다. 은유의 눈에 멋있게 보이는 모습이나 닮고 싶은 태도, 세상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메시지를 크게 보이게 쓴 글이다. 은유의 글은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가 인정했듯이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작업에 가깝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우주를 함께 맞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크게 그린 사람>에서 여름철 밤하늘에 빛나는 은하수처럼 밝고 아름다운 18개의 별빛을 만나게 된다. 저마다의 색깔과 밝기가 다르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소중하다. 은유는 이 책을 자신을 아는 모든 이들, 자신을 모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좋은 이야기는 존재의 숨통을 틔워준다. 보고 듣고 겪는 이야기가 결국에는 자신의 세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은유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 그 이야기를 함께 듣는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