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3년 전 여름 인천 자유공원으로 거슬러 오른다. 아침부터 후덥지근한 산책길서 듬성듬성 떨어진 쓰레기를 거두는 깔끔한 노부인이 보였다.
 “할머니 수고하십니다” 지나는 길에 인사를 건네자 고개를 까닥하며 말을 고루는 품이 어딘가 낯설어 되짚었다. 이것이 일본인 다케다 가즈코(竹田和子)씨와 沈榮燮(충남도민회 명예회장)씨와의 첫 만남이요 맑은 우정의 싹튼 계기다.
 당시 도쿄에 가정을 둔 가즈코씨는 경영 직 남편과 교원인 딸, 그리고 미국에 유학중인 아들을 합친 두루 고른 다복한 집안이었다.
 평소 한일관계에 적지 않은 관심을 지니던 참에 수 년 전 우연히 한국 유학생 洪 아무개가 건네준 ‘柳寬順 傳’을 통해 그녀의 만년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불연 듯 여생을 받칠 일은 바로 이 책자를 일본어로 옮겨 읽힘으로써 일제가 저지른 과오를 일본 젊은 세대로 하여금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 줘야 하겠다는 소명의식이다.
 이후 한국어 입문을 통해 만학의 꿈을 키우는 한편으로 여러 해에 걸쳐 짬짬이 번역에 임하는 과정에서 초기 한일 관계에 시발점이나 다름없는 인천방문을 택했던 저간의 과정이다.
 특히 유관순을 낳은 충남도 배경에 소상한 沈 회장을 알게 됨으로써 작업은 급진전, 마침내 손수 워드프로세서로 숙원을 풀었으니 古稀 넘긴 노인의 집념이 놀라울 따름이다.
 책자장정은 아마추어 수준을 넘지 못하나 꼼꼼한 속내용은 전업 번역가 뺨칠 정도로 유려한 문장이어서 거듭 감탄과 아울러 반응이 클 것이 기대된다.
 문득 돋보기 너머 한일사전 어휘를 찾아가는 그 분의 작업에 상상이 미치면 불자(佛子)가 경전을 옮기는 경건한 과정을 연상케 하는 한 폭의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각설하고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양국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온 느낌 없지 않으나 아직도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여전히 많다. 그처럼 양국의 문화교류가 회자함에도 겉도는 것은 자기나라 자기문화 중심을 고집하는 커뮤니케이션과 무관치 않다.
 영국과 프랑스는 불과 30km 거리인 도버해협을 사이 두었지만 두 나라간의 괴리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주변을 감안 할 지라도 상호정당간조차 아득바득하는 판에 하물며 일본이 가깝다고는 하나 대마도(對馬島) 거리만도 60km 가 아니던가.
 따라서 그간처럼 국가 대 국가의 차원을 넘어선 양 국민이 서로의 처지와 현안을 고민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많아야 한다는 점에서 竹田씨의 노력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다행한 것은 젊은 층간에 한일 월드컵을 기해 동반자의식이 높아 감은 고무적이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상호의 입장을 배려하는 아량이 눈뜨고 있음이 긍정적인 변화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앞서도 지적한 것처럼 양국간에 가로놓인 한(恨)의 역사를 소홀히 보아 넘길 경우 그간의 접근방법이 한낱 거품여론에 그칠 우려 없지 않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최근 竹田和子 씨가 沈榮燮 씨에게 보낸 서신 말미에는 그런 관심의 일단을 토로하고 있어 음미할 값어치가 있었다. “한일 양 국민은 피상적 교류에 그치지 않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 서로가 이해하고 관용하는 마음으로 믿고 도와 가는 좋은 이웃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니 미더운 이웃이 아니던가.
 문득 아련히 떠오르는 대목 하나. 일본영화 ‘러브레터’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이 흰 눈으로 뒤덮인 산마루를 향해 “お元氣ですか?”(오겡키데스카?) 외침이 메아리치던 인간미 넘친 장면 말이다. 부디 러브레터 아닌 ‘실버레터’가 이어지기 바라 마지않는 까닭은 그 같이 정성이 다름 아닌 한일우정의 가교가 될 미덥고 튼튼한 징검돌로 이바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