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훈도 논설위원.
▲ 양훈도 논설위원.

부천이라는 지명은 약 110년 전에 생겼다. 1914년 옛 부평도호부 땅 일대에 새로운 군을 설치하면서 부천이라 이름 지었다. 당시 부천군의 관할지역은 매우 넓었으나, 1930년대 이후 부천군의 상당 부분이 인천으로 편입되었다. 부천의 중심지는 소사읍 일대였다. 중앙정부는 1963년 소사읍에서 안양천 동쪽 7개리를 서울시로 편입시켰다. 하나의 읍이 단일하게 성장하도록 돕지는 못할망정 둘로 쪼개버린 점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다.

부천군은 결국 1973년 완전히 해체되었다. 영종면 용유면 덕적면 대부면 등을 옹진군에 넘겼고, 계양면과 오정면을 김포군에, 소래면을 시흥군에 편입시킨 후 소사읍의 안양천 서쪽 지역만 부천시로 승격되었다. 옛날 부천군과 시흥군 지역에는 행정구역 변천사가 어지러운 지역이 여럿이지만, 이 가운데 부천시의 변천이 가장 복잡하다. 하여튼 부천은 1973년 안양·성남과 함께 도시로 새 출발했다. 이들보다 앞선 경기도의 도시는 수원과 의정부 2곳에 불과하다.

부천시는 경인축의 한가운데여서 도시 발전 여건이 좋다. 예전 소사읍 중심에서 서울 도심까지 21㎞, 인천 기점까지 17.5㎞여서 두 대도시 모두 접근성이 뛰어나다. 1967년 경인고속도로 건설 이후 공장과 인구가 부천으로 몰려든 이유다. 부천의 광공업체 수는 1995년 4000여 개로 정점을 찍을 때까지 계속 늘어났다. 인구도 시 승격 당시 6만5000명에서 1995년에는 78만1,000명으로 1200%나 증가했다.

부천시는 지방자치 민선 1기 때인 1997년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를 시작했다. 제조업 중심 고도성장의 시기가 지나갔다는 점을 간파하고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선 것이었다. 훗날 이 영화제는 아시아에서 꼽아주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부천시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에도 일찍 눈을 돌렸다. 그 덕분에 경기도 문화산업을 이끄는 경기콘텐츠진흥원이 2001년 '경기디지털아트하이브'라는 형태로 부천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부천시 상동 일대는 2008년 만화 및 애니메이션 중심의 문화산업진흥기구로 지정되었다.

부천시는 2016년 3개의 구(소사구 원미구 오정구)를 폐지하고 광역동이 행정을 담당하는 책임읍면동제를 도입했다. 경기도에서 최초로 구를 설치했던 도시가 앞장서서 광역동제를 도입한 점이 이채롭다. 2019년 7월부터는 한 발 더 나가 36개 행정동을 10개 광역동으로 통·폐합했다. 그러나 광역동 시스템이 불편하다는 민원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젊은 도시'의 의욕과는 별개로 자치 행정은 시민의 뜻이 최우선이다. 원상복구든 개산이든 서둘러야 한다.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