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공모사업, 올 4월 선정 추진
6월 말 '마을자치기획단' 첫 모임
2만6000명 도시 업무 직접 해결 목적

청명단오제, 전통·현재 공존 축제로
율천동 청소년 필수품·장학금 지원
도시농업봉사단, 농산물 이웃에 전달
주민들이 채우는 공유냉장고 활성화
▲ 지난 30일 오후 주민 자치를 통해 수원 영통2동 마을을 바꾸기 위한 '마을자치기획단' 행사에서 주민들이 토론하는 모습. /사진제공=수원시

코로나 팬데믹이 일상회복으로 접어들면서 '주민 공동체'가 다시 꽃 피우고 있다. 주민들이 침체에 빠진 마을과 사라지고 있는 전통문화를 살리기 위해 힘을 모으는가 하면, 어려운 이웃 돕기에도 팔을 걷는 등 분주하다. 감염병 탓에 잠시 주춤했던 이들의 활동과 만남이 활발해진 모습이다. 관(官)이 아닌, 민(民)이 바꾸는 세상이라 더욱 빛난다.

 

▲ 수원 영통2동 마을자치기획단 발대식 후 주민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수원 영통2동 마을자치기획단 발대식 후 주민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코로나 단절' 허물고 '새로운 마을' 꿈꾸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무슨 논의를 할지 너무 기대되네요”, “우리가 한번 바꿔봅시다”

지난 30일 오후 6시 30분, 수원시 영통구 영통2동 문화센터 5층 다목적실 내부가 이 같은 주민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특별한 주민모임, '마을자치기획단'이 처음 모인 자리다. 주민 약 130명을 비롯해 지자체·학교·기업·상인회 관계자 등 160여명에 달하는 인원이 찾아왔다.

모임 목적은 뚜렷하다. 마을의 일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서다. 인구 약 2만6000명이 사는 영통2동은 수원 신도심 가운데 비교적 작은 곳에 속하지만, 영통동과 신동·망포동까지 걸쳐있어 다양한 현안이 존재한다. 불균형 발전 등의 이유로 불만이 있는 민원도 꾸준히 발생했다.

이날 평소 마을에서 봉사 등으로 활동한 주민들은 서로를 알아보며 반겼고, 모르면 자기를 소개하고 사람을 사귀는 모습이었다. 약 20분 후. 행사가 시작되자 주민들은 나란히 놓인 원탁 테이블에 앉았고, 장영훈 영통2동 주민자치위원장이 단상에 올라 영통 2동의 현황부터 주요 추진사업, 마을자치기획단 구성 취지 등을 보고했다.

▲ 발대식에서 노래를 부르는 청소년 모습./
▲ 수원 영통2동 마을자치기획단 발대식에서 노래를 부르는 청소년 모습.

주민들은 이후 △내가 살고 싶은 마을 △마을 슬로건 만들기 등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 주민들이 제출한 의견을 한구석에 걸어놓고 가장 우수한 쪽에 투표하는 민주주의 절차도 밟았다. 마을자치기획단은 앞으로 매달 정기회의를 개최, 최종 결론을 도출할 방침이다. 수원시는 관련 내용을 파악해 정책에 반영한다.

일단 △전통·혁신 공존 마을 △공원 조성 △카페거리 활성화 △전철역 개명 △활발한 이웃과 소통 등 과제가 주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었다.

마을자치기획단은 올 4월 경기도 공모사업에 선정돼 본격 추진됐다. 운영 구조를 보면 꽤 체계적이다. 사업총괄·교육·재정·기획지원·홍보 등 분과로 구분됐고, 마을 여론조사와 전반적인 활동기록 등을 주민이 수행한다. 사업비 정산 역할도 주민이다. 한마디로 지방자치단체는 판만 깔아줬을 뿐, 시작과 끝의 주체가 모두 주민이다.

이런 풍경은 2년간 코로나가 단절시킨 '주민화합'이 되살아난 것을 알린다.

▲ 직접 키워 수확한 농산물을 불우이웃에게 전달하는 '도시농업 시민봉사단' 소속 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수원시

영통구 일대는 도시개발을 거듭해 콘크리트 아파트가 가득한 지역이면서, 주민들이 공동체 활동을 통해 마을의 대소사에 함께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2020년 방역수칙 영향으로 주민들이 외부활동이 축소됐다. 꾸준했던 공동체 역시 중단되는 위기를 맞았다.

주민들은 코로나 상황이 풀리자, 스스로 공동체를 찾고 있다. 지난달 11일 주민 수백명이 참여해 성황리에 끝난 '청명단오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매년 이맘때 영통동·매탄동·원천동 등 주민들은 단오어린이공원에 오순도순 모여 전통놀이를 즐기거나, 마을 일을 논의하는 등 시간을 가졌다. 올해로 무려 16회차를 맞았다.

청명단오제는 1998년까지 청명산에서 수령 500년 느티나무(단오어린이공원 위치)를 중심으로 산신제 등 제례의식을 갖고, 주민축제의 장이 열렸다는 역사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주민들은 요즘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추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축제로 발전시켰다.

이주민이 급증하며 5~6년간 중단되기도 했지만, 2005년 주민들이 추진위원회를 꾸려 시와 함께 복원했다. 주민들은 내년에는 더욱 풍성한 공동체 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주부들이 중심인 율천동 주민자치회도 공동체를 한층 활발하게 할 예정이다. 이곳 주민들은 매월 260만원 이상이 모금돼 청소년 생리대·운동화·학용품 등을 지원해왔다. 특히 저소득층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진로개척을 위해 3년간 매달 장학금 30만원을 주기도 한다.

 

▲ 수원 매탄2동 주민들이 공유냉장고에 식품을 채워 넣고  하트를 보내고 있다.
▲ 수원 매탄2동 주민들이 공유냉장고에 식품을 채워 넣고 하트를 보내고 있다.

▲더욱 커지는 '이웃 사랑'

최근 봉사를 향한 주민들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도시농업 시민봉사단'은 지난달 29일 감자 40상자(400kg)를 사회복지관 등에 기부했다. 시민봉사단은 주민들이 탑동 시민농장과 호매실 과수공원에서 땀 흘려 키운 농산물을 불우이웃에게 전달하는 도심 속 독특한 공동체이다.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 탓에 60여명이 최소 범위에서 활동했지만, 올해 신청이 늘어 봉사자가 80여명이 됐다. 하반기 고구마·가지·깻잎·김장 채소(배추·무·파) 등을 재배·수확해 취약계층에 기부하고, 복숭아·배·포도 봉지 씌우기와 같이 농작업을 돕기로 하는 등 봉사 일정이 꽉꽉 차 있다.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도록 주민들이 냉장고에 과일·식재료·반찬 등을 채워놓는 형태의 '공유냉장고'도 활성화되고 있다. 올해 정자1동·세류2동·탑동 등 4곳 지역에서 냉장고 설치를 추가로 신청해 총 39개로 늘었다. 1월부터는 주민들이 '시민네트워크'를 구성, 문제점과 개선사항 등을 의논하며 냉장고 운영을 활성화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지자체가 판을 깔아주고 지원만 하면 주민들은 마을 예산부터 사업 등 각종 필요한 것을 실행하는 것이 주민자치의 기본”이라며 “지난해 10월 대통령 자치분권위원회가 주관한 전국주민자치박람회 최우수상에 율천동이 선정되는 등 마을과 이웃을 위한 공동체 활동이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인터뷰] 장영훈 영통2동 주민자치위원장

코로나19 방역…가로수 털옷 입히기
어르신 말동무 해드리고 선물 전달
수원시 '주민자치회' 전환 과정 의미

▲ 장영훈(49) 영통2동 주민자치위원장./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마을을 향한 주민들의 관심과 열정은 생각보다 더욱 뜨겁습니다.”

장영훈(49) 영통2동 주민자치위원장은 14일 인천일보와 인터뷰에서 “주민자치가 실질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 위원장은 주민들이 마을의 발전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활동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마을자치기획단'도 장 위원장의 아이디어다.

▲ 지난 30일 오후 주민 자치를 통해 영통2동 마을을 바꾸기 위한 '마을자치기획단' 행사에서 주민들이 의견을 적은 종이를 들어 올리는 모습./제공=수원시
▲ 지난 30일 오후 주민 자치를 통해 영통2동 마을을 바꾸기 위한 '마을자치기획단' 행사에서 주민들이 의견을 적은 종이를 들어 올리는 모습./제공=수원시

마을자치기획단은 올해 경기도 마을공동체 공모사업에 선정됐는데, 이는 31개 시·군에 있는 수천개 주민단체 가운데 14개 안에 들어야 하는 경쟁률을 뚫은 것이다. 수원지역에서 유일한 선정 사례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얼어버린 공동체를 다시 활성화하자는 목표다.

장 위원장은 “코로나가 심각했던 당시에도 공모사업에 참여했다. 주민들과 힘을 합쳐 망포역 주변 먹자거리 가로수에 털옷을 입힌다거나 주 2회 방역활동을 했고, 경로당 폐쇄로 심심하신 독거노인 분들에게 찾아가 말동무와 선물 전달을 하기도 했다”며 “사실 이번에 색다른 공동체에 도전하면서 주민들이 관심을 가질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기우였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많은 주민들이 모여 인사하고, 의견을 모으고, 서로 준비한 과일이나 간식을 나눠 먹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수원시는 기존 주민자치위원회를 보다 명문화한 '주민자치회'로 전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에 장 위원장은 마을자치기획단 활동이 상당한 가치를 품고 있다고 본다.

▲ 수원 영통2동 마을자치기혹단 발대식 축하 공연 모습./사진제공=수원시
▲ 수원 영통2동 마을자치기획단 발대식 축하 공연 모습./사진제공=수원시

그는 “주민자치회는 사업 실행 등 권한이나 위원 선출방식을 더욱 강화, 동네 단위의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도록 한다”며 “다만 '주민 참여'라는 관건이 있는데 이번 마을자치기획단의 관심만 보아도 영통2동은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영훈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모든 마을에 코로나 이후 따듯한 공동체가 꽃 피웠으면 한다”며 “주민이 동네에 관심을 갖고, 의제를 발굴하고, 사업으로 이어지며 '마을 주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하는 그런 시스템이 되도록 구성원으로서 노력하겠다”고 했다.

/글·사진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