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우리를 만든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학업과 직장문제로 잠시 거주지를 옮긴 적이 있다. 그도 서울과 세종이었으니, 사실상 도시를 떠난 적이 없다. 도시남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80%가 도시에 산다. 도시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그렇게 애정 하지는 않았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동경하지만, 그렇다고 도시를 떠나 살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다. 공간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그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물고기와 물의 관계처럼 원래부터 함께 존재했던 삶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익숙함에 젖어 도시의 모든 것들을 당연시했다. 알면 사랑하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도시의 공간을, 그리고 도시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도시의 낯익은 얼굴과 낯선 얼굴이 함께 보인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을 마치고 프랑스에서 석사와 건축사 디플롬을 수료했다. 그 후 프랑스 국립 건축가로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과 프랑스, 동양과 서양 두 문화권의 거주민이자 이방인이다. 그의 독특한 건축 작품과 글은 많은 부분 이런 다문화적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의 시선은 도시의 보이지 않는 것들에 줄곧 머무른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무심코 지나쳤던 도시의 다른 일상 속으로 안내한다. 이 책은 건축 안내서나 도시 비평서에서 한 걸음 더 내디딘다. 도시와 도시 사이,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한 목격담으로 채워져 있다. 도시의 숨겨진 다른 모습을 찾으러 떠나는 탐험기에 가깝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읽힌다.

사람들은 익숙해진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보거나, 이미 적응된 상태를 애써 바꾸려 들지 않는다. 설사 본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안다 해도 무엇부터 잘못됐는지 제대로 짚어 내기 쉽지 않다. 우리의 삶의 터전인 이 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운전할 때 늘 보는 신호등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고, 국회의원들이 고함을 칠 수밖에 없는 국회의사당의 공간배치에 대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왜 유독 노래방, PC방, 찜질방, 만화방, 멀티방 같은 '방'이 많은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저 당연시한다. 또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도시를 제대로 보는 법을 알지 못한다.

교통신호는 나쁜 사람만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도시 구조에서 발생한다. 원인을 사람에게서 찾아서는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서구의 도시문화는 질서를 지킬 수밖에 없도록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도시전략을 수립하였다. 유럽의 대도시는 길거리 무단 주차를 방지하기 위해 단속원이나 단속 카메라 대신 아예 보도의 턱을 높이고 길의 형태를 바꿔 다툼과 민원의 소지를 아예 없애는 방향을 택했다. 또한 횡단보도 침범을 방지하기 위해 캠페인과 단속 대신 신호동의 위치와 시야각을 조정해 차량이 정지선에 정차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도시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도시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시스템은 시민이 착하든 그렇지 않든 일관되게 작동할 때 공적 시스템이 된다. 양심 냉장고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

임우진의 <보이지 않는 도시>는 모두 10개의 각각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읽다 보면 독립된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서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어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도시의 문제점을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여행이 끝날 때 즈음 독자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길 바라고 있다.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향해 있다. 결국 도시 속에 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이 도시가 외형적인 발전과 물질적인 성공이라는 강박관념을 넘어서, 함께 사는 공동의 가치에 좀 더 관심을 가지기를 소망해본다.

▲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