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만능주의 만연…비움·겸손 사회상 절실
▲ 象(상)은 코끼리의 코(人)와 두 귀( ) 그리고 네 발(豕)을 그린 글자다. /그림=소헌

마름(지주를 대리해서 땅을 관리하는 자)은 짚단 위에 자리를 깔고 갓을 젖혀 쓴 채 삐딱하게 누워서 일꾼들을 바라보고 있다. 술병을 보니 이미 한잔 걸친 것이 분명한데, 신발은 널브러지게 벗어 놓고 반 풀린 양반다리를 해서는 곰방대를 물고 거들먹거리는 꼴이 볼썽사납다. 지게를 지고 볏단을 실어 나르는 일꾼 아래에는 나무둥치에 볏단을 쳐서 탈곡하는 일꾼이 보인다. 웃통을 벗은 일꾼도 있고, 쌀을 밟아도 손상이 나지 않게 버선을 신고 일하는 일꾼도 힘껏 볏단을 치고 있다. 떨어진 낟알을 비로 쓸어 모으는 일꾼은 나이가 지긋해 보인다. 타작은 본래 수확하는 기쁨이 있어야 하거늘 마름 때문인지 노동하는 일꾼들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는 않다. 꾹 다문 입을 보니 노동요 부르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 김홍도 그림 <타작>.

봉건사회에서 노비의 몸값은 마소보다도 못했다. 그래서 노비를 셀 때에도 人(인)이나 名(명)을 쓰지 않고 가축이나 시체를 세는 口(구)를 썼다. 특히 전쟁이 나면 몸값이 폭락하였는데, 임진왜란 때는 노비 열 명을 말 한 마리와 맞바꾸기도 하였다. 그들은 '말하는 짐승'일 뿐이었다. 영정조시대에서도 10% 남짓한 양반들이 40%에 가까운 노비들을 부렸다. 분재기分財記를 보면 노비는 단지 자식들에게 나누어 줄 재산의 일종이었다. 그때 그 가족은 생이별한다.

도덕경 제25장 象元(상원-세상 모든 것의 으뜸)에서는 우주 만물의 생성원리를 철학으로 풀이하였다. 道의 존재를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설명하였으며, 특히 물리적인 실체뿐만 아니라 인격체로까지 올려놓았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법도를 다룬 점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인내천사상과도 통한다.

뒤엉켜 실재하는 무언가가 천지보다 먼저 있었다. 그것은 소리가 없어 들을 수 없고 형태가 없어 볼 수 없지만 홀로 우뚝 서서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에나 두루 가지 않는 곳이 없으며 절대로 멈추는 일이 없어 천하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굳이 글로 지어 표현하면 道라 부르고, 굳이 이름을 지어 '큰 것'이라 할 뿐이다. 그것은 크기에 어디에나 번져 나가고, 어디에나 번져 나가기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멀리 가고, 멀리 가서는 결국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도는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또한 사람도 크다. 이 세상에는 큰 것 네 개가 있는데 그중에는 사람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은 땅을 법으로 삼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법으로 삼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법으로 삼아 따른다. 도는 자연을 따라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다.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强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人亦大. 域中有四大 而人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道德經」 第25章-象元)

 

象 상 [코끼리 / 형상 / 법]

①象(상)은 코끼리의 코(人)와 두 귀( ) 그리고 네 발(豕)을 그린 상형문자다. 어찌 보면 코끼리는 귀가 큰 살찐 돼지(豕시)라고 할 수 있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온몸을 꿈틀대며 비바람이 지나가듯 움직이는 동물'이라고 했다.②)모양이나 형상(形象.形像.形狀)을 뜻하는 글자는 像(상)인데, 象(코끼리 상)과 像(모양 상)은 서로 혼용하기도 한다.

지난달 29일 완도 송곡항 인근 앞바다 펄에 묻혀 있던 승용차를 인양했다. 차 안에는 비트코인 등 수십 개의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가족이 숨진 채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가 아닐까? 노자는 도덕경 초반부에서 비움과 겸손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자연의 순리를 따를 때 가능하다. 아마도 그가 가장 싫어하는 구절은 이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

 

▲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
▲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