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속담에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지금 당장 현금이 들어가지 않으니 소같이 덩치 큰 가축도 잡아먹을 수 있을 만큼 통이 커진다는 뜻 이리라.
 요즘 우리사회는 카드 빚으로 인한 자살과 가정파탄은 물론이고 제2, 제3의 연쇄 범죄가 전국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이들 용의자들의 대부분은 20∼30대의 무직자나 대학생들이기 때문에 그 사회적 파장과 심각성이 더욱 크다고 하겠다. 또한 우리 주위에는 카드빚으로 인하여 곤경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적잖이 있다. 30∼40대 직장인들 중에도 무분별한 카드 사용으로 곤혹을 치른 경험이 많이 있을 것이다. 높은 은행문턱 대신 손쉬운 현금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어느덧 돌려막기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에게 어느 순간 신용카드 사용의 부작용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신용 정도에 따라 또는 소득규모에 따라 카드사용 한도를 대폭 낮춰 버린 카드사의 횡포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아파트 단지마다 쇼핑몰마다 신용카드를 만들라고 소리치는 판촉직원들에게 이끌려 갖가지 카드를 만들고, 기념품까지 받아가며 뿌듯해하던 주부들은 남편의 경제권을 양도받은 양 대책없이 물건사기를 즐기다보니 가계부에 구멍이 난 줄도 모른다. 신용카드사들은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광고카피로 상류사회로의 진입은 바로 신용카드를 통해서인 것처럼 소비자를 설득하고, 정부 역시 신용사회 정착을 위해서는 현금 보다는 신용카드 사용을 강력 권장해왔다.
 이미 우리나라 신용카드 발행규모는 1억장을 돌파했고 경제활동 인구 1인당 4.7장의 카드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높은 숫자이다. 또한 우리나라 신용카드 사용의 대부분은 현금 서비스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 부채비율 역시 세계정상을 달린다고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온 국민이 빚쟁이가 되는 날이 곧 올 것 같다.
 신용카드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신용카드 제국’의 저자 로버트 D 매닝은 “신용카드는 파국으로 가는 달콤한 유혹”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카드빚 때문에 대학생 자녀를 잃어버리고 가정이 파탄되는 사건들이 단순히 개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신용카드의 편리함만을 강조하며 무분별하게 남발되던 카드정책을 이제는 국가차원에서 그 부작용과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논의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도 현금서비스 규모가 1백조원이 넘었다고 자랑하지만 이는 신용카드 회사들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소비자들을 중독시켜 나갔는가를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 입직의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순진한 젊은이 또는 가정밖에 몰랐던 주부들에게 신용카드는 신기루처럼 황홀했지만 결국은 독약도 되고 흉기도 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소도 잡아 먹을 수 있는 용기가 카드 한 장 때문에 생겼는데, 이러한 부작용을 개인의 부주의와 방탕함에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카드사들은 더 이상 달콤한 말로 소비자들을 현혹해서는 안될 것이며, 정부도 신용카드사의 마케팅 활동에 적절한 제어장치와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다 더 적극적인 정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대한 카드회사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세미나, 캠페인, 사례발표 등을 통해 최소한의 희생이라도 줄여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