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 모습 (1903).

1903년 미국의 한 형제가 인류 최초로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을 난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현재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형제인 그들은 오하이주에서 자전거 가게를 운영 중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자전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서 사업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영국의 수의사 존 던롭에 의해 공기 타이어가 발명되자 자전거는 '사료가 필요 없는 말'이라 불리며, 대당 가격이 무려 100달러에 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수백만 대의 자전거가 보급되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국 사방의 길거리를 누볐다.

그저 꽤나 성공한 자전거 사업가에 그칠 수 있었던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는 1899년 여름, 자전거 가게 위층 방에서 첫 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형제가 비행기를 제작할 때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비상이 아닌 평형이었다. 자전거와 마찬가지로 비행에서도 균형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행기가 하늘에 뜨더라도 한쪽으로 힘이 쏠리면 지속적인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낮에는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고 밤에는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한 고된 연구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하늘은 인류에게 자신의 공간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듯 보였다. 여러 차례의 원정 실험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결과 분석을 통해 비행기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이 반복되었다.

형제는 정규 공학 교육을 받지 못하였지만 나름대로 비행 이론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였다. 특히 그들은 당시 학계에서 150년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진 스미턴 계수에 의문을 품었다. 1759년 영국의 토목학자이자 물리학자 존 스미턴이 양력을 계산하기 위해 도입한 스미턴 계수는 0.005로 알려졌는데, 이는 실험 결과와 큰 차이가 있었다. 라이트 형제는 불굴의 의지로 오랜 실험 끝에 그 값이 0.0033임을 밝혔고 이로써 비행기 날개의 양력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라이트 형제가 사용한 풍동(wind tunnel)은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비행 실험에서 활용되는 장치다. 그들은 길이 1.8m, 단면적 1.4㎡의 나무 상자를 만들고 한쪽 끝에 송풍기를 달았다. 송풍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비행기를 직접 날리지 않고도 날개 주변에 형성되는 힘을 알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들은 두 달 만에 38종의 날개에 대해 실험하였고, 날개를 수평에서 45°까지 기울여가며 분석하였다. 이렇게 풍동 실험으로부터 얻은 결과는 비행기 개선에 적용되었다.

1903년 12월14일 라이트 형제는 킬데빌 언덕에 섰다. 동전 던지기로 정한 첫 비행자는 형 윌버였다. 하지만 '고요 속에서 날아오르는 새는 없다'라며 호기롭게 나섰던 윌버의 비행은 실패했다. 아직은 하늘을 날지 못했으니 비행기가 아닌, 동력 기계에 불과한 플라이어(flyer)는 윌버의 실수로 이륙도 하지 못하였다.

사흘 후 이번에는 동생 오빌의 차례였다. 오빌은 조종석에 배를 깔고 자리를 잡았으며, 윌버는 날개 끝에 서서 균형 잡는 것을 도왔다. 마침내 붙잡았던 밧줄을 풀자 곧 비행기가 될 동력 기계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면을 떠난 비행기는 불과 12초 동안 36m를 나는 데에 그쳤지만, 비행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만일 라이트 형제가 땅 위에서 자전거 바퀴를 구르는 것에 만족했더라면 인류의 숙원과도 같았던 하늘을 나는 꿈은 당분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송현수 과학 저술가·공학박사.
▲ 송현수 과학 저술가·공학박사.

/송현수 과학 저술가·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