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사이에서 서성이는 당신에게

집 거실에 아주 큰 화면의 TV가 있다. 몇 달을 졸라서 겨우 샀다. 명분도 야심 찬 꿈도 있었다. 거실에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예능도 보고 다큐도 보면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역시나 꿈은 꿈일 뿐이었다. 좀처럼 가족들이 거실로 모이지 않는다. 모두 자신만의 공간 속으로 사라진다. 그곳에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이나 웹툰을 보거나 OTT에 들어가 원하는 방송을 골라본다. 화면의 크기, 화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만 몰랐던 걸까. 우리나라 국민 중 60% 이상이 7시 이후에 TV가 아닌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으며, 동 시간대에 TV를 보는 인구는 28%에 그친다는 통계가 있다. 나는 28%였다. TV만 덩그러니 놓인 거실은 내 마음처럼 휑하기만 하다..

우리는 머릿속에서 욕망하는 모든 것을 스마트폰을 통해 해결한다. 그것은 어느새 인류의 새로운 표준생활방식이 되었다. 문명을 읽는 공학자, 저자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는 전작 <포노 사피엔스>에서 스마트폰 이후 등장한 신인류에 의해 인류의 삶이 통째로 바뀌는 문명사적 변화가 도래했음을 주장한다. 그가 예측했던 많은 것들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지금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코로나를 전후로 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코로나 이후 무려 20배의 속도로 디지털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많은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우리의 일상을 디지털 문명으로 빠르게 전환시키고 있다.

위기와 기회는 함께 찾아온다. 미래를 알면 대비할 수 있다. 저자는 전문적인 '기술'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미래의 디지털 신대륙에서 살아갈 '사람'을 이야기한다. 그는 수많은 데이터를 확인하고 필연적으로 다가올 새로운 디지털 문명을 예측한다. 문명사적 접근으로 메타버스라는 세계가 갑자기 생겨난 신세계가 아닌 인류의 진화론적 산물임을 설명한다. 메타버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컴퓨터-인터넷-스마트폰 혁명의 연장선에서 전개되는 '디지털 신대륙'의 확장임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말해준다.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신대륙의 등장과 달라진 인류의 삶의 방식, 새로운 생태계의 형성과정과 미래 변화의 방향 등을 이해가 쉬운 편안한 문체로 풀어낸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이 만든 가장 큰 변화는 조직과 시스템으로 대변되는 거대자본 중심의 시장 생태계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장으로 규칙을 바꾼 것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디지털 문명의 대전환기에는 누구에게나 도전의 기회가 생기며, 그 자격이 따로 없다. 자본이 아닌 디지털 문명에 대한 지적능력이 성패를 좌우한다. 그리고 그 능력을 학습하는 곳도 역시 디지털 신대륙이다. 디지털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자산은 휴머니티와 진정성이다. 공감이 자본이 되는 시대이며, 공감은 휴머니티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관심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공감, 진정성, 배려, 휴머니티, 소통 등 이 모든 요소가 디지털 문명의 중요한 키워드라 말한다.

관점디자이너 박용후는 사람의 인생은 자기가 문장 앞에 쓴 단어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하필이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차이이다.

변화는 때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변화를 이겨내야 하는 건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숙명이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다만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아니, 어쩌면 애써 모른 척하는지도 모른다. <최재붕의 메타버스 이야기>는 이미 와 있는 미래 앞에, 하필이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에서 서성이는 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책이다. 새로운 표준문명에 대한 깊은 관심과 통찰은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들의 가장 큰 자산이다. 메타버스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이 책을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