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와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단체와 지지집단을 고소하는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비록 무혐의로 처분되었으나 제주도지사를 성추행 혐의로 고발한 제주여민회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바 있고, KBS노동조합 K씨 성폭력 사실을 공개한 성폭력 100인위원회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계류 중에 있다. 또한 죽암휴게소 여성노동자 K씨는 직장 상사 P씨에게 수년간 상습적인 성희롱을 당하다가 청주지방노동사무소에 고발했는데 피해자의 진술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된 후 명예훼손죄와 협박죄 등으로 구속된 바 있다. 그리고 경산지역 K대학 K교수, 대구지역 K대학 L교수는 성폭력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대구여성의 전화를 사이버 명예훼손죄로 고소해 공동대표 2인이 각각 2백만원 벌금형을 받았다. 이외에도 스토킹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한 여성단체의 활동가, 경기도 광주에서 강제추행한 이장을 고소했다가 무고죄로 고소당한 부녀회 O씨 등 성폭력 피해자들과 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여성단체들이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성폭력 피해자들이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당하는 문제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 여성계, 학계, 법조계 인사들이 공동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성폭력 추방운동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 공동대책위원회’라는 대책 기구를 구성하여 지난 7월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련의 역고소 사건들에 강력히 대응하고 피해자의 인권과 여성, 인권단체의 공익활동에 대한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대책위는 이중에서도 동국대 K교수가 피해자 M씨와 동료 조은 교수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고소를 대표적인 역고소 사건이라고 보고 이 사건 해결에 집중하기로 했다. 조은 교수는 직접 당사자도 아니고 동국대 여교수회 및 주변 교수들로부터 피해자 진술의 진위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고 피해자 M씨의 서면진술에 근거하여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성추행 사건을 해결해야 할 위치에서 양심의 소리대로 행동한 것 뿐인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는 적반하장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대책위는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여 법적 대응을 해 나가는 한편 성폭력 추방운동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 반대 서명운동, 대책활동 기금 마련을 위한 ‘만명이 만원씩 내기’ 모금운동, 성폭력 추방운동에 대한 명예훼손 역고소 실태 및 대응방안 토론회 등 사회여론화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특히 공동변호인단은 명예훼손 역고소 사례들을 수집해 형법 307조 중 ‘위법성 사유’ 를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에 있다. 형법 307조는 ‘공연히 사실 및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에 대해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고 있지만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위법성 조각사유라 하여 명예훼손죄를 인정하지 않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주변 사람들과 여성단체 등에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과정에서 성폭력 사실이 공개되게 된다. 예를 들어 성폭력 가해자가 성추행 사실에 대한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성폭력 사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피해자 책임으로 몰고 가거나 무고죄로 피해자를 고소하는 경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부득이 성폭력 피해사실을 공개하고 가해자의 범죄 행위를 드러내는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지원자가 성폭력 피해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과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공정한 비판은 형법의 처벌대상이 될 수 없다. 검찰은 조은 교수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하여 조은 교수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피해자 M씨에 대한 명예훼손 및 무고 사건에 대해서도 당연히 무혐의 처분을 내려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강제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하여도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검찰이나 법원이 성폭력 범죄의 특성을 무시하고 일반 형사사건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목격자의 진술이나 물증 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 중에서도 특히 강제추행 사건은 목격자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고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피해자의 피해 상황에 대한 진술과 정황이 가장 유력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성문화상 피해자가 오히려 비난당하기 쉽다. 이러한 허점을 이용하여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오히려 무고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의 특성을 고려하여 다른 형사 사건과 달리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과 정황을 중심으로 성폭력 사건을 판단하도록 물증 조건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