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굴업도(掘業島)는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섬이다. 인천 앞바다에 떠 있는 섬마다 고유의 특성을 자랑하지만, 굴업도는 그 이상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인천에서 90㎞, 덕적도에서 13㎞ 거리에 위치한다. 사람이 엎드려 일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굴업도로 불렸다. 섬 지형은 대개 해발고도 100m 이내 구릉으로 이뤄졌다. 연안여객터미널에서 1일 1회 운항하는 여객선을 타고 덕적도에 도착한 뒤 다시 배를 갈아타야 한다.

굴업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로도 불린다. 그만큼 사람의 때를 타지 않은 채 천혜의 자연환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섬에 인공적인 시설은 거의 없는 편이다. 도시처럼 불빛도 보이지 않아 밤엔 은하수 등 별들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요즘엔 섬의 개머리 언덕을 중심으로 캠핑을 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배낭을 메고 캠핑을 즐기는 백패킹족들은 꼭 한번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히기도 한다. 섬 곳곳의 언덕에 올라 너른 바다를 바라보노라면, 온갖 시름을 잊게 되리라.

아마도 굴업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핵폐기장 건설'로 인해 높아지지 않았나 싶다. 정부는 1994년 굴업도를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했다. 그러자 덕적도 주민들은 물론 인천시민과 환경단체 등이 나서 극렬하게 반발했다. 결국 굴업도 아래에 지진대가 지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계획은 무산됐지만, 반대 과정에서 곪은 상처는 한동안 지속됐다.

그러다가 2009년엔 개발 열풍이 불어닥쳤다. 대기업인 CJ그룹이 굴업도를 매입해 골프장과 리조트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큰 논란을 빚었다. 기나긴 '싸움' 끝에 시행사 측이 계획을 철회해 섬의 생태를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섬의 대부분을 소유한 회사가 또 개발을 추진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불씨가 여전한 셈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굴업도가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인천지역 환경단체들은 최근 성명을 내고 옹진군 굴업·덕적도 해역의 모래 채취와 관련한 행정절차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30년 넘게 인천 앞바다에서 바닷모래를 퍼서 올렸으나, 해양 환경변화에 대한 전문적인 검증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인천시는 지난 5월3일 굴업·덕적도 해역을 골재채취 예정지로 지정하는 '일반해역이용협의서'를 인천해양수산청에 제출한 상태다. 여기엔 굴업도 북방 5㎞ 해상 총 19.18㎢ 면적에서 5년간 바닷모래 3500만㎥를 채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인천 앞바다에선 오랫동안 바닷모래 채취로 인한 문제가 벌어졌다. 한쪽에선 바닷모래를 퍼내고, 여기저기 해수욕장에선 모래 유실로 인공적으로 모래를 공급하기도 한다. 골재를 싼 가격에 빨리 조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재활용 방향으로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보석 같은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