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인천은 디아스포라(Diaspora)란 영단어와 아주 밀접하다. 영어사전을 보면,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 이외 지역에 이산되어 사는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나중에 자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공동체나 거류지를 일컫는 말로 뜻을 확장했는데, 인천은 '떠나고 흩어지는' 곳이란 의미에서 이와 부합된다. 한국이민사박물관 건립과 디아스포라영화제 개최 등의 장소를 인천에서 선택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인천은 한국 이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로,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이민 출발지다. 그 역사를 잠깐 훑어보자. 1902년 12월22일 제물포항에서 121명이 일본 여객선을 타고 이역만리로 떠났다. 그리고 신체검사에서 탈락한 19명을 제외한 102명이 1903년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수년간 7500여명이 하와이로 이주해 사탕수수밭 노동자로서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정주에 성공했다.

이민자들에게 조국은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힘든 삶 속에서도 늘 우리 생활 관습을 지키면서 언제든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가 1910년 조국이 주권을 잃었을 때, '고향가기'를 포기하고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항일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이들이 특유의 성실함과 교육열을 지니고 자랑스러운 한인사회를 꾸린 일은 요즘도 회자된다.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750만여 재외동포가 인천을 통해 모국과 거주국을 오가며 이민의 역사를 함께한다.

영화를 통해 '다름에 대한 관용'의 가치를 새긴 제10회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지난 5월24일 애관극장에서 폐막식을 끝으로 5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영화제에선 디아스포라 장·단편, 디아스포라의 눈 등 5개 섹션에 걸쳐 세계 31개국 63편의 작품이 상영됐다. 폐막선언에 이어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분쟁지역의 평화를 기원하는 성명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2022년은 한국 이민사 120주년을 맞는 해다. 그래서 인천에선 오는 10월 기념사업을 진행한다. 얼마 전 인천시와 재외동포재단은 첫 이민자들이 고향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국의 땅 월미도 소재 한국이민사박물관에서 사업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그런가 하면 이민사박물관은 10∼11월 '사진으로 보는 디아스포라 120년' 전시회를 연다. 여기선 이주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600여점과 영상 3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회는 이주 한인들이 미주 전역으로 퍼져나가 뿌리를 내린 역사를 알린다. 아울러 일제 강점기 중국·러시아·일본·사할린 등으로의 이주,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등 다양한 이민사를 소개한다.

이민이 시작된 인천의 역사성을 살피는 일은 중요하다. 이주자들의 고난과 애환뿐만 아니라 공존과 존중의 의미를 되새겨야 해서다. 이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포용력을 품은 인천의 정체성을 재조명했으면 한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