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되면 그 누군가와 동무가 된다
▲ 변진경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

오래전이다. 세간에 화제가 됐던 <이경규가 간다>라는 예능이 있었다. 이경규와 제작진이 횡단보도 주변에 숨어 있다가 신호등 정지선을 지키는 차를 찾아 냉장고를 선물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새벽 4시13분, 새로운 날을 맞았으나 보행자가 있건 없건 정지선을 지키는 차는 없었다. 끝없는 기다림에 지친 제작진은 철수를 고민한다. 그 순간 경차 한 대가 횡단보도 앞 정지선에 정확히 멈춘다. 제작진은 인터뷰를 요청한다. 창문을 내린 사람은 장애인 부부였다. 이경규는 부부에게 질문한다. “왜 신호를 지키셨나요?” 운전자인 말이 어눌했던 지체장애인 남편은 대답한다. “내… 가… 늘… 지켜요.” 당연한 말이 주는 큰 울림. 하지만 그 당연한 것을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를 위한 나라는 모두를 위한 나라다. 작고 약한 아이가 걷기에 안전한 길이면, 그 길은 이 세상 모두에게 안전한 길이 된다. 길을 걷는 아이를 보호하면 노인, 장애인, 환자, 임산부 등 길 위의 모든 보행 약자들도 안전해진다. 그래서 어린이 보호구역은 곧 사람 보호구역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인천에서 2021년 상반기에만 스쿨존 내 속도·신호 위반 건수가 14만 건이 넘었다. 아이에게는 스쿨존 안과 밖, 모든 길에서 안전하게 다닐 권리가 있다. 민식이법 이후 운전자들이 스쿨존에서 갖게 된 긴장감과 경각심이 어쩌면 차도 옆 주변 환경을 인식하며 자신의 속도를 감각하는, 보행자 중심 교통문화의 최초 경험일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약한 목소리에 마음을 두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가까이 타인에게 다가가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저자는 기자다. 그는 오랫동안 아동·청소년들의 삶과 권리에 마음을 두었다. 남들보다 그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우리가 가닿지 못하는 곳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에는 아동학대, 밥과 건강, 불평등과 안전, 인권과 난민 아동, 그리고 코로나 19 이후 교육회복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울퉁불퉁한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저자는 소리 높여 주장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정리해 우리 눈앞에 차분히 들이민다. 그의 시선이 참 따뜻하다. 그 마음이 온전히 전해진다.

영국의 사회학자 배리 골드슨은 “어린 시절은 국가의 바로미터”라고 말한다. 한 국가가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느냐를 통해 그 사회와 개인이 어떠한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내 아이만 행복한 세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아이들은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오늘 이곳에서부터 충분히 행복해야 한다. 모든 아이가 안전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내 아이도 행복하다. 그러나 많은 어른은 불확실한 미래를 얘기하며 아이들의 행복을 잠시 뒷전으로 미룬다. 이 책은 아이들이 현재의 가난과 결핍 때문에 불행하지 않도록, 미래의 성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이 저당 잡히지 않기 위해 지금 당장 바꿔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한다.

“내가 누군가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되면 그 누군가와 동무가 된다.” 저자가 묻기만 하는 자의 부끄러움에 파묻혀 있을 때 용기를 주었던 문구다. 그는 맺음말에서 독자들도 함께 궁금해하고, 이야기를 듣고, 울어주기를 소망한다. 그러면 울고 있는 아이들의 동무가 또 한 명 늘어날 것이고,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 믿고 있다. 지금 어떤 것을 상상해도 그보다 더 나쁘고 불행한 일들이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취약한 아이들에게 벌어질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전체의 작은 일부일 뿐, 관심과 시선이 가닿지 못한 곳이 아직 많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은 '설마'의 무심함이 아닌, '혹시'의 관심과 애정으로 우리를 세상 속으로 안내한다.

▲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