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 이문일 논설위원.

“인천은 일본의 침략과 수탈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웠던 시절, 병들고 가난했던 사람 곁에 병원을 세워 치료하던 의료인들이 꼭 거쳐야 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들이 조선사람들에게 보여준 인류애와 박애정신, 민족의 계몽과 자강의 길을 일깨웠던 일을 가르칠 교육의 장이 우리 세대에 필요합니다.” 며칠 전 인천일보에 실린 광고 글이다.

개항(1883년) 후 인천엔 서양식 의료기관이 잇따라 선을 보였다. 의료 선교사들이 인천을 거쳐 가면서 지역에 대한 의료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 인천 최초로 서구식 병원(성 누가)을 세운 랜디스 박사가 대표적이다. 한국 성공회 초대 주교 고르페(한국명 고요한)와 함께 1890년 9월 제물포항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중구 송학동에 진찰실과 입원실을 꾸렸다. 약대인(藥大人·서양 의사란 뜻)으로 알려진 그는 환자들에게 치료비를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과로로 인해 1898년 4월 32세란 짧은 삶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인술 선교는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그와 더불어 미국 출신 여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이는 1887년 서울에서 개원한 국내 첫 여성병원 '보구여관(保救女館)'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보구여관은 당시 병원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었던 여성을 위해 설립됐다. 로제타 홀은 낯선 땅 조선에서 헌신적으로 의술을 펼치며,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1928년)를 세워 의료인 양성에도 힘썼다. 서울과 평양에서 의료 활동을 벌인 그와 인천과의 인연은 1921년 인천기독병원 전신인 인천부인병원을 설립하면서 비롯됐다. 일제는 1938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이 병원을 몰수한 후 인천부후생병원이라 개칭했다. 해방 후 감리교 미여선교부에서 한국전쟁 때까지 인천부인병원으로 계속 운영하다가 1952년 5월26일 감리교 미선교부에서 인천기독병원으로 바꿔 문을 열었다.

'로제타홀기념관'은 이렇게 기독병원을 세운 로제타 홀 여사의 업적을 기리고 근대 의료역사를 한데 모아 보전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한다. 지난 13일엔 사단법인 설립 기념행사를 열고 인천에 '한국근대의료역사박물관'을 건립하자는 제안을 했다. 법인 측은 “기독병원 100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로제타 홀 여사의 사료들을 모으다 보니, 한국 근대 의료역사의 중심이 인천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며 “기념관을 확대해 근대의료역사박물관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 여야 국회의원들도 박물관 설립에 힘을 쏟겠다고 화답한 상태다.

인천은 개항 이후 서구 문물이 조선으로 오는 통로였다. 지금도 근대 유적이 많은 중구에 개항 이후 의료인들이 환자를 치료하며 민족 계몽과 자강을 일깨우던 모습을 보여줄 공간을 마련하면 어떨까. 다른 도시엔 없는 '한국근대의료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을 세워 '치유와 사랑'의 정신을 펼쳤으면 싶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