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일 논설위원.

인천의 근대건축물이 시나브로 사라진다. 개항기부터 산업화 시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증언'하는 건축물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점차 자취를 감춘다. 국내 처음으로 기계를 이용해 소주를 생산하던 조일양조장, 각종 비누를 만들던 애경사, 일제 강점기 수탈의 상징이던 오쿠다정미소, 전통 방식으로 나무배를 만들던 신일철공소 등이 대표적이다.

인천에 근대건축물이 집중된 곳은 중구와 동구다. 얼마 전 인천시 조사 결과를 보면, 중구 195개와 동구 59개 등의 건축자산이 이름을 올렸다. 인천지역 전체 492개 중 52%를 차지한다. 이 중 근대건축물은 중구(153개)와 동구(47개)에 몰려 있다. 1883년 개항 이후 외국, 특히 일본 자본이 들어오면서 중·동구에 건물을 지어 이렇게 많다.

1930년대 세워진 동일방직은 군수공장이었다. 일제 때 조선 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현장으로 유명했다. 1978년엔 여성 노동자들을 탄압한 일명 '똥물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의 탄압을 피해 간 곳이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동일방직은 2014년 생산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면서 2017년부터 폐쇄된 채 방치돼 있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는 1961년 지은 근대건축물로, 현재 재개발지구에 포함돼 철거 위기에 놓였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21년도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 10곳을 선정하면서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꼽기도 했다.

일제 때 출발한 일진전기 공장도 근대건축물로 꼽힌다. 1938년 화수동 매립지에 들어섰는데, 전기 관련 용품을 생산하던 도쿄시바우라(도시바) 소유였다. 1944년 군수회사로 지정됐다. 이 공장 사무동 건물은 일제 때 건물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역사적 가치를 평가받는다. 2014년 12월 공장 가동 중단 후 비어 있는 상태다.

이런 중·동구 개항장 근대건축물 등을 보전·관리하는 사업이 속도를 낸다. 인천시는 지난달 29일 중·동구 산업유산지역(북성동·만석동 일원 226만5251㎡)과 개항기 근대건축물 밀집지역(중구청 일원 47만1476㎡)에 대한 '건축자산 보전방안과 진흥구역 지정 수립 용역' 보고회를 열었다. 용역에서 핵심 지역은 일진전기·동일방직·북성포구 등 산업유산을 포함한 곳이다. 시는 일진전기 인천공장 터(화수동 8만3607㎡)와 북성포구 일대(7만6010㎡)를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근대건축물을 보호하려면 무엇보다 지자체에서 앞장을 서야 한다. 그동안 인구유출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개발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이젠 그런 정책에서 탈피했으면 싶다. '원도심 재생'이란 큰 그림 속에서 부동산을 개발하며 인구를 끌어들일 계기가 필요하다. 일제 강점기부터 근대까지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근대건축물을 보전하는 일을 좀더 촘촘하게 짰으면 한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