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경신 기독병원 원목·목사.

요즘, 애플TV가 제작한 <파친코>가 세계인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세계인이 주목하는 이유를, 낯선 곳에서 이민자로 살았던 주인공과 그 가족이 받았던 차별, 고단한 삶의 모습에 공감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일본 식민지의 삶을 경험한 한국인들은 <파친코>라는 작품을 통해, 일본의 침략과 수탈로 피폐해진 민중의 삶과 고향을 떠나게 된 이민의 이유 그리고 나라가 지켜주지 못해 겪어야 했던 억울함,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시대가 준 상처와 아직도 이어지는 흔적을 본다.

어제의 기억이 글로 남겨지고, 남겨진 글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면 역사라 할 수 있다. 한국근대역사에는 일본의 침략과 수탈 그리고 전쟁을 거치며 남겨진 상처들 고난, 가난을 견디어 낸 개인들의 기억이 모여 흐르고 있다. 이 기억의 흐름이 다음 세대까지 잘 이어지게 만들어 놓은 박물관이 부산에 있다. 506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7만5465㎡의 부지에 지상 3층 지하 4층, 연면적 1만2062㎡의 건물이 부산시민회관 근처에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국립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박물관을 부산에 만든 이유를 “일본의 조선 수탈은 전국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부산은 수탈된 모든 물자와 강제 동원된 사람들이 모여 일본으로 보내진 항구”였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러나 한국근대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힘들고 절망스러운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잠시 잊었을 뿐이지, 암흑의 시기에도 조선 사람을 치료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희망을 갖도록 도와준 사람들의 이야기도 역사의 강물 속에서 멈추지 않고 흐른다.

예를 들면 1884년 고종이 미국 선교사에게 교육과 의료사업을 허락한 후, 제물포를 통해 입국한 서구의 의료인들은 서울, 평양, 원주, 원산, 개성, 해주, 대구, 광주, 전주, 공주, 부산 등 전국 각처로 흩어져 진료소와 병원을 세우고 환자를 치료하였다. 이들은 조선이 주권을 잃어 백성을 보호할 수 없을 때도, 이 땅에 계속 찾아와 병들고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들을 치료하며 위로하였다. 병원만 세운 것이 아니라 학교를 세워 의료인 양성에도 힘썼으며. 이들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가져온 의료장비와 설립한 병원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병원이 되었고, 현대적 의료시설이 되었으며 역사적인 일이 되었다. 이렇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서양 의료인 중 대표적인 인물이 'Dr. 로제타 홀'이다. 그녀가 한국에서 보낸 43년의 세월을 당시 언론은 보도를 통해 기록으로 남겼다. 그 기록을 보면, '조선의 은인' '장애인의 은인' '평양의 어머니' 등의 표현으로 그녀의 의료적 헌신과 사회사업 분야에서의 공헌에 감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감사는 곧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특별히 인천에는 Dr. 로제타 홀이 세운 '인천부인병원'이 있고, 인천지역 의료발전에 공헌한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데, 인천시는 타 도시에는 없는 “백 년이 넘는 의료문화유산”을 통해 한국근대의료문화를 계승하려는 모습이 없다. 이유는 기억의 흐름이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단절된 기억을 찾아보면, 인천의 역사를 기록한 <仁川市史>(1973년)는 'Dr. 로제타 홀과 인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1923년 감리교 미선교사 『홀』(Hall) 의사가 간호원 『고수도』와 함께 중구 율목동 238번지에 인천부인병원을 개원하였다. 1938년 제2차 대전이 일어나자 일제는 병원을 적산으로 취급하고 몰수한 후 인천부후생병원이라 개칭하고 인천부에서 운영하였다. 해방 후 이 병원은 미군정법령에 의하여 감리교 미여선교부에 환원되어 1950년 한국동란까지 인천부인병원으로 계속 운영하게 되었다. 1952년 5월 26일 감리교 미선교부에서 인천기독병원으로 설립 개원한 바…” 개원년도(1921년) 표기에 오류가 있긴 하지만, 1970년대까지 인천시와 인천시민은 로제타 홀을 기억하고 있었다.

인천은 제물포 조약 이후, 서구 문물이 조선으로 오는 통로였으며, 지금도 한국근대역사 유산을 간직한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다. 근대 유적이 많은 중구 개항장에는 개화기 근대의료유산과 당시 의료인들이 환자를 치료하며 민족 계몽과 자강을 일깨우던 모습을 보여줄 공간이 필요하다. 다른 도시에도 '한국근대의료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 없기에 의료인들이 조선에 오는 통로였던 인천에 근대의료역사박물관을 세우는 일은 더욱 필요하다. 치유와 사랑이 필요한 지금, 박애와 사랑의 실천자였던 '로제타 홀의 정신'은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된다. 이에 '사단법인 로제타 홀 기념관'은 그녀의 삶과 정신, 그녀와 같은 삶을 살았던 의료인들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강경신 기독병원 원목·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