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지리서 동국여지승람과
조선 농서 행포지 등 고문헌서
경기도 '쌀 명산지'로 기록

특히 이천·여주 재배 '자채쌀'
찹쌀처럼 찰지고 부드러워
일본 황실도 탐낸 수라상 단골

 

조선팔도 이름난 가장 귀하고 좋은 음식재료를 모아 차리던 임금님의 수라상. 산해진미로 가득한 수라상 위에 단연 최고의 진상품은 '경기미'였다. 임금님도 반한 맛 '제2화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경기미'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 이천 쌀밥집은 신둔면 사음동 쌀밥거리에 집중적으로 모여있다. 화려한 밑반찬 구성과 이천 쌀로 지은 돌솥밥을 맛볼 수 있다./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 이천 쌀밥집은 신둔면 사음동 쌀밥거리에 집중적으로 모여있다. 화려한 밑반찬 구성과 이천 쌀로 지은 돌솥밥을 맛볼 수 있다./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경기미의 추억

▲ 강희맹이 쓴 금양잡록./사진제공=국립중앙도서관
▲ 강희맹이 쓴 금양잡록./사진제공=국립중앙도서관

조선시대 제9대 임금인 성종은 조선시대 왕들 가운데 미식가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이토록 까다로운 성종의 입맛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바로 '경기미'다. 경기미의 기록은 다수의 고문헌에서도 등장한다.

이천부사 복승정(卜承貞, 1490년)의 치적자료에 따르면 세종대왕릉으로 성묘를 갔다 환궁하는 길에 이천에서 머물던 성종에게 이천 쌀로 지은 밥을 올렸는데, 성종은 예사 쌀이 아님을 알고 이때부터 수라에 올릴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천 쌀은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쌀'로 소개되면서 전국 제일의 쌀로 불리게 됐고 이를 모티브로 브랜딩 한 '임금님표 이천쌀'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서도 이천 지역은 땅이 넓고 토양이 기름져 미질이 뛰어난 쌀이 생산되는 쌀의 명산지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천 농경지는 물 조절이 쉽고 양분이 많아 벼농사에 좋을 뿐 아니라 여주를 거쳐 한양으로 운반하는 수송로까지 갖춰 어느 지역에 쌀보다도 신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미는 특별한 쌀이었다. 조선시대 농서 행포지를 간행한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도 경기도에서 생산된 쌀의 맛이 좋다는 기록을 남겼다.

성호 이익 선생의 저서 '성호사설'에는 여주, 이천에서 난 벼가 다른 고장보다 먼저 익으면서 많은 이익을 본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이천지역의 벼가 상품 화폐로서 가치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조선시대가 농경사회의 번영을 이룩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세종의 명에 따라 편찬한 최초의 농서 '농사직설'이 보급되면서다. 농사직설은 농업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농업기술서로 농사를 위한 씨앗 저장법, 토질 개량법, 모내기법 등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농사직설이 백성들에게 배포되면서 농사법이 개선됐고 조선은 농경사회의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경기 지역의 조선시대 농사 상황은 '금양잡록'에 잘 드러나 있다. 농사직설이 관찬사서라면, 금양잡록은 개인이 간행한 농업 서적이었다.

강희맹이 제작한 금양잡록은 경기도 금양현(현재 과천 시흥 일대)의 낙후된 농사법에 주목하고 열악한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펴낸 것으로 당시 경기도 벼농사 상황이 상세하게 서술돼 있다. 이를 통해 경기도의 농경문화는 급속도로 성장을 이뤄나갔다.

 

임금도 반한 맛 '자채쌀'

 ▲ 이천·여주 지역의 벼 재배 모습.

까다로운 성종의 입맛을 사로잡은 밥맛의 비결은 '자채쌀'이다. 자채쌀은 토종 품종으로 이천과 여주 일대로 재배되던 '올벼(조생종)'를 뜻한다.

자채쌀은 1700년대 중국에서 들여와 여주 이천을 비롯해 주로 한강 중류지역에서 재배됐다. 일반벼보다 잎이 좁고 키가 20~30㎝ 정도로 붉은색을 띠어 자광벼(紫光)라고도 불렸다. 자채쌀은 밥을 지으면 밥알이 희다 못해 푸른기가 돌아 찹쌀처럼 찰지고 부드러운 맛을 내면서 일본 황실에서도 탐을 낸 쌀이다.

일교차가 심한 이천과 여주 지역은 지리적 특성상 자채쌀을 재배하기에 적합했다. 또 일조량이 풍부하고 진흙이나 모래가 적절히 배합된 토양, 유기성분이 많은 토질은 자채쌀의 생육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자채쌀은 다른 벼와 달리 추석 이전부터 수확이 가능했다. 일찍이 한강수운이 발달한 여주와 이천지역에서는 쌀을 수확한 뒤 양화창(여주 능서면에 있는 쌀 창고)과 서울의 경창(중앙부 창고)을 거쳐 가장 신선한 쌀을 임금께 진상했다고 전해진다.

최근 외래품종을 줄이고 토종 품종의 자급률을 높이고자 여주에서는 자채쌀의 개량 품종인 '진상미'를 개발하고 보급 확대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진상미는 찰기가 있고 부드러운 식감을 가진 품종이다. 특히 단백질 함량이 낮아 '식어도 맛있는 밥' 맛을 유지하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임금님 pick! 경기미 3대장

▲ 이천과 여주에서 '임금님 진상미'를 앞세운 마케팅으로 국내 쌀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경기미의 명성은 조선시대 전기 이후로 얻어졌다. 경기도에서는 여주, 이천, 김포, 평택, 안성, 화성, 파주, 용인, 양평 등에서 전국 쌀의 10%가량이 생산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여주와 이천, 김포 지역에 쌀은 경기미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특히 이천, 여주는 '임금님 진상미'를 앞세운 마케팅으로 국내 쌀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천 쌀은 이천하면 '쌀'을 가장 먼저 떠올릴 만큼 적당한 윤기와 찰기, 대중적인 식미로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마사토가 주류를 이루는 이천 지역의 농경지는 물 조절이 쉽고 양분이 많아 벼농사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최근 이천시는 쌀 시장에 독립을 선포하고 토종 품종인 '해들'과 '알찬미'의 보급 확대에 나서고 있다. '해들'과 '알찬미'는 다른 품종에 비해 병충해에 강하고 품질도 우수했다. 고시히카리와 같은 외래품종에 비해 미질 또한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주는 예부터 만년 풍년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농약, 화학비료 대신 쌀겨, 한방약초 등 자연농법으로 재배지를 조성하고 조선시대의 농법을 그대로 시행하면서 최고의 쌀을 생산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 여주 지역은 산이 많지 않아 햇볕 드는 시간이 길고 풍수해가 적다. 여주의 토양은 규산과 유기물의 함량이 높은 사양토로 벼의 생육기 내내 충분한 양분을 공급해 주기 때문에 뛰어난 미질의 쌀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던 '자채쌀'의 개량품종인 '진상미'를 개발하면서 찰지고 기름진 밥을 맛볼 수 있게 됐다.

김포 지역은 한강을 주변으로 비옥하고 기름진 넓은 평야를 가지면서 국내 손꼽히는 곡창지대로 알려졌다. 또 한강과 서해안을 낀 반도성 기후로 가을철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벼가 익는 시기의 온도가 알맞아 벼의 결실을 좋게 하는 특성을 보인다. 또 소립으로 심복백이 없고 투명해 미질이 뛰어나다.

 

[인터뷰] 이상열 이천 쌀 연구회원

▲ 이상열 이천 쌀 연구회원
▲ 이상열 이천 쌀 연구회원

“누구나 좋아하는 이천 쌀, 알찬미로 더욱 맛있어졌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 쌀의 고장 이천은 모내기가 한창이다. 이천 쌀 연구회 이상열(54)씨는 쇄도하는 주문과 농사일에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씨는 인터넷방송과 SNS를 통해 '오빠네 쌀' 채널을 운영하면서 산지직송 이천 쌀을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다. 그는 이천 쌀의 인기 요인을 '호불호 없는 대중적인 맛'으로 꼽았다.

“이천 쌀은 다른 지역의 쌀과 비교해 호불호가 덜 나뉘는 편입니다. 너무 찰지지도 거칠지도 않아 대중적인 식감을 자랑하죠. 특히 알찬미나 해들 품종이 도입되면서 내병성이나 태풍에도 뛰어나 수확량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차별화된 경영 철칙과 유통 방식을 도입한 그가 생산한 이천 쌀은 전국 도처로 팔려나갔다.

“인터넷방송과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장 신선한 쌀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죠. 가입 회원들을 대상으로 도정 당일 소식을 전달하고 10㎏ 이하의 소량 판매만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최상품질의 이천 쌀을 드실 수 있도록요. 또 직접 농사 현황을 인터넷 방송으로 제공하면서 내가 먹는 쌀의 생산과정을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지켜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천 쌀의 명성에 더불어 독보적인 유통 방식까지 더해지면서 이천 지역에서도 이씨의 쌀은 명물이 됐다.

쌀에 있어선 일가견이 있는 이씨가 인천일보 독자들에게 이천 쌀을 가장 맛있게 먹는 비결을 제시했다.

“지역마다 물의 성분이 각기 다릅니다. 각기 다른 물로 지은 밥의 맛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땐 수돗물 대신 생수로 밥을 짓는 것을 추천합니다. 또 수확 시기에 따라 밥을 짓는 요령도 달라집니다. 추석 이전에 수확한 쌀들은 되도록 물의 양을 넉넉하게 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 갓 도정한 쌀일수록 신선하고 맛이 좋은데 도정 일자를 확인해 쌀을 구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터뷰] 심정보 전 여주농협조공법인 대표

▲ 심정보 전 여주농협조공법인 대표
▲ 심정보 전 여주농협조공법인 대표

“여주쌀은 찬밥일 때 진가가 드러납니다.”

심정보(65) 전 여주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 대표는 여주쌀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여주에서 나고 자라 36년간 농협에 몸담으며 여주 쌀 홍보대사를 자처해 온 그였다. 자칭, 타칭 여주 쌀 박사로 통하는 심 대표가 여주 쌀의 가장 큰 강점은 식어도 흩어지지 않는 식감에 있다고 했다.

“여주 쌀은 밥이 식어도 찰기가 있고 맛이 좋습니다. 다른 쌀보다 유기물 함량이 높기 때문이죠.”

그는 여주가 맛좋은 쌀을 재배하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과 생산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내세웠다.

“여주는 중부 내륙에 위치하고 강원도 원주지역이 인접해 있어 구릉지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또 남한강이 가로지르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죠. 이 때문에 일교차가 크고 수원이 풍부해 미질이 뛰어난 쌀을 생산합니다. 특히 수확한 쌀의 저장방식에 따라 미질에 영향을 끼치는데 여주의 경우 100% 저온양곡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매우 신선합니다.”

여주 쌀에 자부심이 남다른 심 대표에게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유통 방식이 조금 아쉽습니다. 고시히카리로 유명한 일본 우오누마 지역에선 회원제를 통해 직거래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주에서도 회원제를 일괄 도입해 직거래 판매가 활성화된다면 맛좋고 저렴한 쌀을 소비자들에게도 제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米지의 세계] 맛있는 쌀 고르는 법은, 갓 수확·도정한 쌀 선택

▲ 임금도 반한 맛 '자채쌀', 경기미.

좋은 쌀을 고르기 위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하는 것은 '수확 일자'와 '도정 일자'이다. 쌀의 신선도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도정일이 최근일수록 산화가 적어 밥맛이 좋다. 적어도 전년도에 생산된 쌀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또 좋은 쌀일수록 투명하고 광택이 난다. 또 쌀의 모양이 균열한 것이 특징이다. 또 혼합미보다는 단일 품종이 단백질 함량이 적어 밥맛을 더 좋게 한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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