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도출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이 무산 위기에 놓였다니 안타깝다. 조정위원회가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최종안을 내놓았으나, 피해자단체 일부에서 미흡하다는 입장이고, 가해자인 살균제 제조·판매 회사 9곳 중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이 조정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정이 성립되지 않으면 피해자 구제가 기약 없이 또 미뤄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의 동의 여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옥시와 애경이 조정안을 거부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옥시와 애경은 조정 기준이 모호하고, 피해자들의 추가 보상 요구를 막을 방안이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조정안에는 전체 피해보상금 중 옥시가 54.2%를, 애경이 7.4%를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발생 당시 전체 살균제 판매량 1000만개 가운데 옥시가 490만개, 애경이 172만개를 팔았다. 이 비율로 추정하면 두 기업의 분담 비율이 불합리하다는 주장은 전혀 납득되지 않는다. 추가 보상 요구 운운도 법과 제도의 맹점에 방패삼는 구실에 불과하다. 추가 보상이 그리 쉬운 문제라면 이번처럼 조정위원회를 구성하는 상황에 이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은 지난 11년 동안 옥시와 애경이 보여주었던 뻔뻔한 태도를 기억하고 있다. 문제가 터진 초기에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잡아떼거나 자신들의 제품은 '친환경'이었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거라브 제인 전 옥시 대표는 2016년 검찰 수사 당시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바빠서 조사에 응할 수 없다”거나 “전혀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했다. 옥시 영국 본사 역시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영국에 찾아가 항의 시위 등을 벌이고 나서야 마지못해 공식사과 했을 따름이다. 이번 조정안 거부는 그동안 드러났던 오만하고 뻔뻔한 태도가 여전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경기환경운동연합은 엊그제 성명서에서 최대 가해기업이 피해조정안을 적극 수용하고 피해자와 국민에게 사죄하지 않으면 '범도민 불매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2016년에도 옥시 불매운동이 거세게 번졌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법도민이 아니라 세계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