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는 사업자가 외국인 인력을 고용하는 것을 허가·관리하는 제도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미국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2003년 8월16일 법률 제6967호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2004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는 고용을 허가할 때 근로조건을 준수할 수 있는 사업자인가를 확인할 수 있어 무자격사업자의 외국인근로자 고용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로 입국(비전문 취업·E-9 비자)한 외국인 노동자는 4년10개월(기본 3년·연장 1년10개월) 동안 '사업장 이동'이 금지되는 족쇄 같은 원칙이 존재한다.

일자리를 바꾸려면 관련 신고서에 사업주 서명이 있어야 돼 노동자가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다. 만약 못 버텨서 사업장을 벗어나면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한다.

실제 광주시 한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회사의 귀책사유로 공장에 화재가 발생해 5개월여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휴업수당'을 받지 못하고 수차례 이직요청에도 사업주가 받아주지 않고 있다.

특히 임금 미지급·부당 삭감·과소지급 등의 부당한 처우를 받거나 폭행·폭언·성추행 등 범죄행위를 경험한 외국인 노동자 중 대부분이 사업장 변경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외국인들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했다가 더 나은 근로조건을 찾아 중간에 그만둠으로써 회사가 인력을 다시 구해야 하는 애로를 방지하고자 이런 조항을 마련한 것인데, 이로 인한 피해를 감수해야 사람이 오로지 노동자 몫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매년 3월21일 UN이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지난달 20일 민주노총과 이주노조는 서울 도심에서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에 대한 권한을 전적으로 사업자에게 쥐여주는 고용허가제 폐지를 주장하는 기념대회와 행진을 벌였다.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해고나 비자 갱신 불발 등의 불이익을 우려해 제대로 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때그때 바꾸는 땜질 식 처방이 아닌 이주노동자와의 논의를 통한 제도의 문제점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