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오후 두 세시쯤, 마침 파출소도 한가한 시간대였다. 팔십이 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이끌고 분노에 찬 표정으로 파출소에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넋두리를 늘어 놓으시면서 하소연을 하셨다.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난 머리도 아프고 다리, 허리 어디 한곳 안 아픈 곳이 없는 늙은이”라며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시고는 당신의 처지에 대해 말씀하시길 혼자 살면서 리어카에다 못쓰는 고철도 줍고, 신문지 등 폐휴지도 줍는다고 했다.
“근데 할머니 우째 오셨어요”라고 다시 묻자, 할머니는 더욱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내가 하루종일 주운 고철과 폐휴지를 고물상에 가지고 가니까…, 주인이 2천5백원을 주었다”고 하면서, “내가 속이 상해서 돈을 팽개치고 파출소를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머니께 그럼 그것이 할머니 볼 때는 얼마쯤 되어 보이는 양이었냐고 되물으니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5천원은 충분히 되어 보인다고 하셨다. 그때야 난 할머니의 분노와 파출소를 찾은 모든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할머니 제가 2천5백원을 그냥 더 드리면 안되겠어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펄쩍 뛰는 목소리로 고개를 막 가로 저으셨다. 잠시 후 난 할머니께 “할머니! 이제는 그 고물을 팔 때는∼ 고물상에 가서 여기 파출소장이 우리 손자요”라고 말하면서 파시라고 농담삼아 말하니까 할머니 말도 안된다는 말투로 “어떻게 그렇게 말해유∼. 거기 사람들이 모두 내가 혼자 사는 것을 다 아는데…”라고 하셨다.
난 어찌 처리를 할까 생각하다가 순찰차를 타고 할머니와 함께 고물상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할머니는 고물상으로 가는 순찰차 안에서도 이제는 되었다 하는 말투로 “고맙워유∼”라고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느꼈다.
난 고물상을 찾아가서 주인을 만나, 할머니께서 파출소를 찾아온 경위를 말하며 할머니가 주워온 고물의 양이 5천원쯤 된다는 할머니의 말만 강조하고 있었다. 물론 내 표정에는 은근히 여기까지 찾아온 경찰관의 체면을 살려 5천원을 채워달라는 ‘반협박’과 애원이 함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잠시 후 고물상 주인은 할머니께 1천원짜리 다섯장을 내어주며, 다시는 고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미소는 내게 지으며 말을 했다.
할머니는 “정말! 고맙다”는 말과 표정을 반복하시고는 집을 향하여 걸어가셨다. 난 할머니가 얼마나 분하고 억울하면 파출소를 찾으셨을까도 생각해 보았고 고물상 주인의 입장도 한번 생각해 보았다. 어쨌거나 난 할머니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삶이 무엇이고 인생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했고, 최근 국적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얘기들이 참으로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김정호·인천부평서 중앙파출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