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1월 11일 화성시 정남면 야산에서 발생한 F-5 전투기 추락사고로 수년째 겉돌고 있는 수원군공항 이전문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투기 추락사고 이후 수원군공항과 인접한 화성시 동부권 주민들은 군공항 이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급기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군공항 이전을 약속했다. 선수를 빼앗긴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부랴부랴 지역 주민들을 만나 민심 탐방에 나서는 형국이다.

수원군공항 이전 문제는 국방부가 2017년 군공항 이전 예비용지로 화성시 화옹지구를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수원과 화성시, 지역 주민이 찬반으로 갈려 갈등을 빚은 지 벌써 6년째다.

군공항 이전을 추진하는 수원과 반대하는 화성시는 조직 안에 공식 전담부서를 만들고 매년 수십억 원 예산을 배정해 사용했다. 그 사이 수원시는 군공항 이전 대상지에 국제민간공항을 유치하는 지역발전론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화성시는 서해안 갯벌 보호를 위해선 군공항 이전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단순 찬반 의견에서 진화된 명분을 각각 찾은 것 이외에는 없다. 이 때문에 두 지자체가 행정력과 예산을 답도 없는 곳에 헛돈을 쓰고 있다는 비판에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안전을 책임져야 할 지자체가 도심 속 군공항 안전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는 것이다. 찬반 명분 찾기에 혈안이 됐지만 정작 안전문제에 대해선 등한시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1월11일 수원 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가 군공항 인근 지역에서 추락한 이후에야 두 지자체는 물론 시민들은 도심 속 군공항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지자체는 알고 있으면서 시민의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기 위해 말을 아껴왔다고 변명할 수 있지만 말 그대로 '비겁한 변명'이다.

수원시 장지동, 화성시 황계동 일원에 있는 군공항 인근에는 수원과 화성시 주민 23만64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 주민들은 전투기 이착륙 중에는 서로 말을 소통하기 어려울 만큼인 75웨클(WECPNL·항공소음 단위) 이상의 소음손해를 입고 있다. 그만큼 군공항과 인접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공군 심정민 소령의 고귀한 희생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

공군에 따르면 조종사인 고 심정민 소령(추서 계급)은 비행 중 낡은 전투기에 결함이 발생하자 '이젝션(Ejection·탈출)'을 두 번 외치면서 비상탈출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심 소령은 다수의 민가의 피해를 우려해 끝까지 조종간을 잡은 것으로 조사됐다.

비상탈출 선언 뒤 기체가 추락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초. 조종사 탈출 시간으로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심 소령은 자신의 희생을 택했다. 그는 29살 청년이자, 결혼 1년 차 새신랑이었다.

심 소령의 희생이 없었다면 전투기 추락 지점 반경 600여m 안에 거주하는 120여 가구의 주민들은 어떤 일을 당했을지 상상하기에도 끔찍한 일이다. 언제까지 도심 속 군공항 안전을 꽃다운 청춘의 희생으로 지켜내야 할 것인지, 그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군공항 안전문제로 불안에 떨고 있는 화성시 동부권 주민들이 국방부와 지자체에 발끈하는 이유다.

추락사고 직후 화성시 봉담·안녕·기배·화산동 주민 등 2만7000여 명이 모인 회원 커뮤니티에 “민가 피해를 막기 위해 고장 난 전투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희생해 애통하다”며 “군공항을 조속히 이전하지 못한 정부와 지자체는 분명히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런 여론은 급기야 단체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민 4만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화성시 병점권연합회는 국회의원, 시의원과 연달아 만나거나 건의문을 보내는 방식으로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 찾아가 지지부진한 군공항 이전 사업에 대해 항의했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이 수원군공항 이전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참에 선거 출마자들은 지루한 논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합리적 대안을 공약으로 내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국방부도 군공항 이전문제를 지역 문제로 치부하고 불구경하듯 한 자세를 버려야 한다. 국방부의 어정쩡한 태도가 지금의 갈등을 초래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현안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용단이다.

 

/김기원 경기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