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쳐 몰랐던, 아니 잊혀져간 수많은 기억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곧 3·1절이다. 33인의 민족대표와 기미독립선언서, 그리고 유관순 열사와 아우내 장터.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모두의 기억이자 역사의 한 조각이다. 책으로, 역사수업으로 배운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 그리곤 되묻게 한다. 나라면, 너라면 그 당시에 어떻게 했을까? 누구나 이런 질문 한 번쯤은 가져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아니 잊혀간 수많은 기억이, 그리고 만나야 할 역사가 있다. 한겨레출판이 펴낸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는 우리를 기록에서 사라지고, 기억에서 잊힌 여성독립운동가 14인과의 만남으로 인도해 준다.

이 책은 김마리아 등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마치 한 편의 역사소설을 보듯 그림과 글로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전체 구성은 인물별 한 꼭지씩 모두 14개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꼭지마다 화백 윤석남이 그린 여성독립운동가의 초상이 독자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초상화가 이미지라면, 김이경은 그 이미지에 이야기를 덧붙여 인물들의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저자의 글쓰기는 '독립운동사'라는 기존의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 있다. 인물별로 1인칭·3인칭 시점, 인터뷰, 다큐멘터리, 편지 형식 등 여러 문학적 기법을 활용하여 그들의 삶을 다채로운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인물들이 마주한 시대의 모순, 삶과 고뇌, 인생 역정들을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하기 위함이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에서 우리는 의열단 등에서 활동한 영화 '암살'의 모티브였던 항일무장투쟁운동가 남자현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교육자, 노동운동가·임정 요원·간호사·해녀·언론인·비행기 조종사·사회운동가·군인의 모습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들은 조국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동지들과 함께 그들이 서 있는 그곳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어둠의 시대에 일제와 맞서 싸웠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소망이다. “14인의 초상을 보며 그들의 삶을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의 뜨거움으로 남기를. 그들도,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도 모두 살아 있음을 느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한다.

독립자금 조달 등 임시정부와 동고동락하며 독립을 위해 헌신한 임정 요원 정정화는 스물에 집을 떠나 마흔여섯에 '임시정부'의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귀국길에 오른다. 그 길에 그가 남긴 글은 지금의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마음 담아 옮긴다. “얻고 싶었던 것을 얻었고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가는 지금, 나는 그토록 갈망했던, 제 한 몸을 불살랐으나 결국 얻지 못하고 찾지 못한 채 중원에 묻힌 수많은 영혼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대신해 조국에 가서 보고해야 한다. 싸웠노라고, 조국을 위해 싸웠노라고. 나는 아들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인천대는 3·1절 103주년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422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신청했다. 이 중에는 인천 중구와 강화에서 새롭게 찾아낸 81명의 독립유공자도 포함되어 있다. 올해는 광복 77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일제로부터 조국이 해방된 지 8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우리들에게 잊힌, 아직도 찾아내고 기억해야만 하는 독립운동가들이 많다는 것은, 그 날의 역사가 온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만남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역사가 된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미처 몰랐던 소중한 만남이다. 그 기억은 오늘을 사는, 내 삶의 부분이자 전체가 된다.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