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정의한다. 필리핀에 사는 동안 나라와 정치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하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2018년 4월29일 두테르테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쿠웨이트에서 일하는 가사노동자를 포함한 필리핀 노동자 송출을 금지하고 쿠웨이트에서 모든 필리핀 국민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사건은 쿠웨이트에서 일하던 20대 필리핀 가사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살해당하고 1년이나 집안에 유기된 상태로 발견되면서 발단이 되었다. 대통령은 쿠웨이트에서 일하는 26만명의 자국민에게 귀국을 촉구하고 무료전세기를 보내 그들을 필리핀으로 이송했다. 그 장면이 TV 전파를 탔다. 그는 귀국한 국민의 일자리와 생계를 위해 재난기금을 사용할 의사가 있음을 알렸다. 우리 동네에서도 한동안 이 끔찍한 사건과 필리핀 정부의 수장 두테르테 대통령이 자국민을 위해 내린 보호조치에 대해 오랫동안 들썩이며 회자하였다.

필리핀은 2019년 기준 인구의 2.09% 수준인 230만명의 노동자가 해외에서 일하는 노동력 수출국이다. 현재는 코로나로 타국에서 일하는 노동자 43% 정도가 감소했으나, 평범한 가정에서도 가까운 친인척 몇은 지금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낯선 나라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쿠웨이트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신들의 피붙이에게 일어난 일인 마냥 깊이 공감하고 슬퍼했다. 또 외교문제가 생길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누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막의 구출' 작전을 펼치며 고용주에게 학대당하는 가사노동자들을 탈출시킨 대통령에 신뢰를 보냈다.

몇해 전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한인사업가가 범죄자들에게 희생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필리핀 공직자들까지 연루된 의혹이 제기되어 교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했으나 지금까지 의혹만 제기될 뿐 사건의 진상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도 재판이 질질 끌며 5년째 1심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해외에서 터를 잡고 사는 한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생명을 위협받는 일들을 자주 겪곤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교민들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우리 정부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의 도움을 받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리비아 내전이 일어났을 때도 많은 교민이 집과 사업체를 버리고 겨우 몸만 빠져나오며 여러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 정부가 우리 교민들의 안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겠지만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멀리 우크라이나에서도 러시아와 전쟁 위기로 교민들이 우크라이나 밖으로 탈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해외에 사는 우리 국민의 안전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가 있겠으나 적어도 쿠웨이트 사건만을 떠올려본다면, 필리핀 대통령이 자국민의 안전을 살뜰히 챙겨 필리핀 국민에게 믿음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디모데전서 2장 1∼2절)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권합니다. 그대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며 감사하시오. 왕들과 높은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시오.”(번역본 <현대인의 성경>)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말한 대로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위해서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면, 나라의 대표로 일하는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와 내 이웃, 소외된 사람들의 고요와 평안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하란 뜻일 테다. 이제 곧 대한민국과 필리핀 두 나라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낮은 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대통령과 공직자들이 선출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정은 필리핀 아누나스 행복한우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