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춘프카

지난해 5월의 어느 날이었다. 토요일 오전이었고 하늘에서는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당시 나는 동네 책방에서 진행하는 작은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작가와 독자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른 주말에 날씨까지 나쁜 덕에 참석자는 적었다. 딱, 일곱 명이었다. 함께 모여 앉으니, 자연스럽게 서로 안부를 묻게 됐다.

사춘기 딸을 둔 어머니의 하소연부터 우울한 표정의 취준생, 코로나19 여파로 계획해둔 신혼 여행은커녕 결혼식조차 올리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하는 예비 신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대한 소외를 말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연이 오갔다. 모두 흥미로웠지만 유독 시선에 닿는 사람이 있었다. 한쪽 구석에 앉아 시종일관 무료하고 흐릿한 눈빛으로 행사를 지켜보던 여학생이었다. 이내 본인 차례가 되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마음의 병이 있어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참석자 모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곧 침묵을 깬 것은 작가였다. “요즘 마음속에 병 하나쯤은 다 키우잖아요. 저도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병으로 여기지 않으셨으면 해요.” 다감한 목소리였다. 계속되는 위로와 함께 김중미 작가의 책 <존재, 감> 내용 일부를 소개했다.

“'내가 아는 단어가 이렇게 적었나?' 싶을 정도로 위로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그냥 옆에 있으면 돼요. 아무 말도 없이. 이틀이 됐든 사흘이 됐든 그렇게 옆에 있다 보면 나눠지더라고요.”

그렇게 살아오고 위로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마음이 허한 사람에게 필요한 위로는 그럴듯한 정답이나 조언이 아닌, 함께 나눌 수 있는 타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물론 타인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노력을 통해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자밀 자키가 쓴 <공감은 지능이다>에 따르면, 공감은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후천적 능력이고, 연습을 통해 키울 수 있는 기술이다. 큰 고통을 겪거나 고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아닌 사람에 비해 타인에 대한 공감도가 높은 건 역지사지의 경험에서 얻은 것일 것이다. 밑줄 그었던 문장도 있다. '이야기는 공감의 풍경을 평평하게 만들어, 멀리 떨어진 타인의 그 거리를 더 가깝게 느끼도록, 그리고 서로를 염려하기 쉽도록 만든다.'

이야기를 듣던 여학생은 표정이 한결 좋아졌다. 여전히 위태롭고 힘겨운 시간을 관통하겠지만 조금은 다른 태도로 마주하지 않을까.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마음의 감기'니까. 수줍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마음이 계속 허했거든요. 그런데 뭔가 채워지는 기분이네요.”

 

/춘프카 작가·<유일한 일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