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루 갖춘 밥상을
함께 받는 세상을 위해

많은 사람이 오늘도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 액정 위에서 미끄러지듯 쇼핑을 한다. 주문하는 품목은 정말 다양하다. 배달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을 찾는 것이 더 빠른 세상이다. 오늘 밤에 주문하면 내일 새벽이면 문 앞에 도착해 있다. 생산부터 배송까지, 어떤 이들의 손을 거쳐 왔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 하지만 이들의 노동에 모두가 기대어 사는 사회. 저자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이다.

정은정의 <밥은 먹고 다니느냐는 말>(사진)은 '밥은 먹었느냐'는 말과 '밥은 먹고 다니느냐'는 말, 그 사이 어디쯤에서 서성이는 이들에게 전하는 밥과 노동, 사람과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농촌사회학자이다. 우스갯소리라며 스스로를 '글로생활자' 또는 '말로생활자'라고 칭한다. 글과 말로 쌀과 반찬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저자의 이야기는 참 따뜻하다. 진솔함이 묻어 있다. 밥과 노동의 현장 속에서 직접 보고 살아온 기록이기에 그렇다.

이 책은 밥을 얘기하지만 그 흔한 '맛집'이나 '먹거리'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밥을 벌다 목숨까지 잃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더 맛있게 먹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세상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서울지하철 구의역 열아홉 청년 노동자 김군과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그들의 유품에서 나온 컵라면은 그 어떤 말보다 힘이 있다. 인간의 식사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되묻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신체와 영혼의 칼로리를 채우는 것, 그것이 엄연한 식사라는 저자의 말에는 마음을 흔드는 울림이 있다.

저자는 유통업계의 성장을 떠받치고 있는 배달 노동의 현실을 비판하고, 자영업자의 고단한 삶과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살아가는 농촌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방학 중 학교급식이 멈춰 제대로 된 끼니를 놓치고 편의점 가판대를 서성이는 결식아동의 오늘을 걱정한다. 삼각 김밥, 컵라면, 편의점 도시락으로 대변되는 20대 청춘들의 초라한 밥상과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도시보다 더 빨리 혼밥 시대를 맞이한 농촌 노인들의 외로운 밥상을 주목하기도 한다. 이 겨울, 온기 있는 밥상은 누가 받고 있는지 소년과 청춘, 그리고 황혼의 밥상마저도 차기만 하다.

저자는 우리에게 먹거리 생산지로서의 농촌만 귀한 것이 아니라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귀하다 한다. 농촌의 작은 목욕탕이 귀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고, 농약을 제일 많이 먼저 뒤집어쓰는 농민들이 우비와 마스크라도 잘 쓰고 일하는지 누구 하나쯤은 살펴봐야 한다고 안타까워한다. 도시의 숨 막히는 고통은 농촌의 고통에서 출발하였기에 이젠 농촌을 돌보고 아픈 도시를 다독일 때라 말한다. '도마도 집' 딸인 그는 힘없고 사라지는 것들에 예를 다하는 세상이라면 살아 있는 것들에 정성을 쏟는 일도 마다치 않을 것이라고 여전히 순진하게 믿는다.

어느 시인은 밥은 하늘이며 하늘을 혼자서는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이라 노래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보는 하늘은 다 똑같지만 우리네 밥상은 모두가 다 같지는 않다. 시인의 노래처럼 '밥이 하늘'이기 위해서는 먼저 할 일이 있다. 골고루 갖춘 밥상을 함께 받는 세상을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밥상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출발점에 정은정의 <밥은 먹고 다니느냐는 말>이 함께 서 있다.

/이성희 인천시교육청 교육연수원 교원연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