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내 고향을 떠나 필리핀에 거주하는 동안 두 번의 대선을 함께했다. 2010년 필리핀에서 내가 첫 번째로 맞은 선거는 여권에 찍힌 도장 잉크가 마르지도 않은 시점에 이루어졌다.

나는 아직도 필리핀 대통령 선거 분위기와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거리에는 후보자를 알리는 벽보가 나붙었고 트라이시클(손님을 태울 수 있는 좌석 칸이 달린 오토바이)은 움직이는 광고판이 되어 굉음을 울리며 사방을 활보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부터 노란 리본을 유리창에 붙인 차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는 그 노란 리본을 볼 때마다 얼마 전 억울하게 생을 달리했던 고국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나 애잔하며 반가웠다. 그래서일까 짐 정리로 바쁜 길을 오가며 그 노란 리본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노란 물결은 필리핀 전국의 거리를 뒤덮고 그 주인공을 15대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당선자 노이노이 아키노 대통령은 1남 4녀 중 셋째로 마닐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베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은 마르코스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가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되었다. 죽은 남편의 뒤를 이어 필리핀 민주주의 혁명을 이끌어 1986년 마르코스 정권을 몰아내고 국민의 지지로 11대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키노가 노이노이의 어머니다. 필리핀 국민에게 아키노 대통령 가문은 민주화의 상징으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 15대 대통령 선거를 얼마 남기지 않은 2009년 8월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영면했다. 노란 리본은 코라손과 아들 노이노이를 향해 필리핀 국민이 추모와 지지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차차 알게 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노이노이는 필리핀의 경제 성장을 이끌고 국가 재정을 안정화했다. 특히 2014년 중국과 분쟁이 있는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하여 중국 측 주장을 전면 부정하는 판결을 얻어냈다. 61세의 나이로 모자(母子)가 대통령이 된 특별한 기록을 남기고 별세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필리핀에서의 첫 번째 선거와 당선자의 이야기다.

교회가 있는 다리 아래 동네 아누나스의 토박이였던 마일린이 선거를 마치고 돌아와 손가락을 보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검지손톱 아래로 파란빛 잉크가 물들어있었는데 선거를 마친 유권자에게 재투표를 방지하기 위해 표시해주는 것이었다. 마일린은 대선도 관심이 있었지만 자치단체장인 시장이나 부시장선거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당시 지역의 유력한 몇 가문이 돌아가며 시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있다.

필리핀에서는 후보의 인지도가 선거를 판가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부모가 정계에 진출한 가정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지방의회 선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거출마를 통해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며 자신을 알리는 데 힘을 쏟는다. 마일린과 동네 사람들은 선거철만 되면 선심성 금품을 제공하고 표를 얻는 일부 후보들에 대해 볼멘소리를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이들의 교육에 또는 곤궁한 가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표를 찍어주기는 하지만 당선이 되고 나면 누구의 이익을 위해 뿌리는 선심이고 공약인지 어찌 그들이라고 모르겠는가. 그래서 선거 후에는 누가 누구를 밀었다는 등 뒷말이 많았던 것 같다.

올해 필리핀은 5월9일로 예정된 선거에서 17대 대통령과 부통령을 포함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회의원 등 1만8180명의 공직자를 선출한다. 필리핀 무허가주택 빈민가의 목회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세상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따라 오랜 기간 그 지역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이 쫓겨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과 필리핀 대통령 선거를 맞아 노란 리본을 떠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정은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