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새해 첫 아침 식사 기도를 드리고 있는 '꾸야' 다비드.

필리핀의 새해는 세상에서 낼 수 있는 온갖 요란한 소리를 한데 모아 놓고 시작한다. 그 요란한 새벽을 보내고 맞은 새해 아침, 간소한 식탁을 차려놓고 기도하는 모습을 올린 앞집 꾸야의 사진 한장에 웃음이 나온다.

'꾸야'란 필리핀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형제를 호칭하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남자 어른을 살갑게 부를 때 삼촌이라 부르는 것처럼 사용된다. 꾸야 다비드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 것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필리핀 모든 도시가 몇 주간이나 봉쇄되었을 때였다. 교회 주일학교를 나오는 에덴이 부모님이 면담을 하고 싶어 한다고 알려와서 마주 앉게 되었다. 여섯째의 출산을 앞둔 에덴 엄마도 왔다. 용건은 집을 팔려는데, 교회에서 매입할 의향이 있는지 아니면 주변 한국인에게 팔아달라는 것이었다.

꾸야 다비드 가족은 팬데믹 이전에는 아누나스에서는 아쉬울 것 없는 집이었다. 다비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지금 사는 집도 사장님께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5만여원 주급을 받으며 월세 5만원 이상을 내며 사는 데 비해 털털거리는 승용차도 세워놓고 사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친구들을 불러모아 술을 마시고 노래방 기계를 빌려 온종일 흥이 끊이지 않게 보내곤 했다.

시련은 코로나로 호텔 사장님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시작되었다. 그런 사정이 비단 그에게만 생겼을까마는 재난지원금이 끊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전기가 끊겼다. 별 방법이 없었는지 교회 전기를 며칠만 끌어다 쓰자 하여 그렇게 해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찍 전기를 다시 연결했다. 차를 팔았던 것이다. 부인과 찾아온 날 그는 지금 사는 집을 팔고 인근에 싼 땅을 사서 집을 다시 짓고 싶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교회도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없는 교회 살림에 마을 사람들에게 쌀과 생필품을 나눠주며 각자 집에서 성경쓰기를 독려하며 버티던 터라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대신 꾸야의 아이들이 말씀을 읽고 주말마다 한 보따리씩 구호물품을 받아갔다.

지금도 꾸야의 여덟 식구는 교회 앞 작은 집에 산다. 큰아들 아이반이 몇 달간 집을 떠나 건설노동자로 일하다가 최근에 돌아왔다. 중학생 나이에 힘든 일을 하는 것을 생각하니 늘 마음 한쪽이 편치 않았다. 꾸야 다비드의 새해 아침 사진을 보며 미소 짓게 된 것은 그의 가족들이 부침을 겪은 울퉁불퉁한 시간들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시련들이 없었더라면 필리핀 새해 전통대로 열두 가지 둥그런 과일을 식탁에 차려놓고 가족의 안녕을 빌며 다 같이 둘러앉아 기념사진이라도 찍었을 것이다.

꾸야 다비드는 2022년 새해 첫 아침을 비록 멸치 세 마리와 커피 한 잔을 놓고 시작했지만 풍성한 식탁 앞에서는 드리지 못했을 가난한 마음의 기도를 전심을 다해 창조주께 올려드렸을 것이다. “올해는 꼭 코로나도 끝나고 필리핀 국경도 개방되어 한국사장님이 돌아오시길…”라고 말이다.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선교사.필리핀 아누나스 행복한우리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