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초 세관, 완전보존 못했지만
항만유산 존치·도시재생 긍정적 사례

수인선 지하철 공사로 철거 위기에 놓여있던 인천세관 옛 창고가 시민들의 힘으로 일어나 다시 태어났습니다. 창고 주변으로 공원을 이루고 창고와 부속동은 세관박물관이 되었습니다.

인천세관역사공원 바로 앞에 수인선 신포역 2번 출구가 있습니다. 지하철 출입구도 인천세관역사공원의 일부인 듯, 고전적인 느낌을 품은 벽돌 양식이 눈에 띕니다. 신포역 2번 출구 위치는 인천세관 옛 창고의 본래 위치였습니다. 계획된 수인선 철로 길목에 있던 인천세관 옛 창고 철거 논의가 나오고 철거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지역 사회와 학계를 아우르는 시민의 힘으로 철거가 아닌 보존을 택했습니다. 항만도시, 개항도시 인천의 유산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세관창고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세관창고를 40m 옮겨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게 됩니다.

인천세관은 1883년 개항하던 해에 설치된, 한반도 최초의 세관입니다. 일본은 1911년 인천항 제1부두에서 세관 청사와 여러 동의 창고를 지었고 그 일부가 1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대로 우뚝 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인천세관 청사의 모습은 문헌자료로만 남아있는데, 그 모습을 표현하면 세관 청사에는 화려한 박공 문양과 전면 상위에 신사의 탑을 본뜬 장식이 있었습니다. 6·25전쟁으로 인천세관 본 건물은 불타 없어졌고, 창고 3동과 일부 부속동이 남았는데 이후 창고 2개는 철거가 되고 현재의 위치로 40m 이전한 1개 동과 부속동은 '2013년 국가등록문화재 제569호'로 지정되어 인천 개항 및 항만의 역사를 지키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전면 입구를 중심으로 건물의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처마와 창 테두리 장식 등에서는 15~16세기 발달한 르네상스의 양식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전을 하며 세관 옛 창고의 동쪽 벽만 그대로 크레인으로 옮겼고, 나머지 벽과 지붕은 해체 후 재조립했다고 합니다. 1911년 이후 증축된 부분을 고려하지 않아 전면의 길이가 8m가량 짧아지고 출입구의 모습이 달라지며 완전한 보존은 실패했지만 인천세관 옛 창고 및 부속 건물들이 이렇게나마 보존되었기에 다행입니다.

가치 재해석으로 인한 철거의 실수를 훗날 알기엔 무책임하고 늦습니다. 개발만큼이나 공존이 주목받는 시대에 인천세관역사공원은 1883년 인천 개항으로 등장한 근대 관세 행정 역사를 보여주는 항만 유산 존치의 노력과 도시재생의 긍정적인 선례가 될 것입니다.

/제2기 시민기자단 이주형

/도시재생센터 시민기자단 블로그 blog.naver.com/iurc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