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설 시인의 시 '사려니숲'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려니숲에 가서 알았습니다/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한 냄새를 이 숲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시를 처음 읽은 날, 제주도에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결심만 몇 년 째다. 가끔 시를 꺼내 다시 읽는다. 어지러운 뉴스에 개인 사정도 겹쳐 마음 시끄러운 올 연말엔 유난히 이 시가 생각난다.

“삼나무, 졸참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 길목에 펼쳐진 풍경에 감전되어 자박자박 걷습니다/ 길은 아는 길은 아는 곳으로 낯선 길은 낯선 곳으로 통합니다/ 세상의 시비(是非)도 이곳까지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나는 오래된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어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넘을 수 없는 마음도 이곳에 오니 야트막한 언덕으로 보입니다”

세르비아 출신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가 떠오른다.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진행했던 '예술가가 여기 있다'다. 60대 중반 아브라모비치가 탁자 맞은편에 앉은 관객에게 말없이 눈길을 건넨다. 관객은 조용히 응시하는 아브라모비치 앞에 3~4분 앉아있다 떠난다. 일견 싱거워 보이지만, 퍼포먼스는 무려 736시간이나 계속되었고, 관객 850만명이 뉴욕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옛 연인이자 동료 작가였던 울리히가 관객이 되어 찾아오기도 했다. 예술가는 시선으로 에너지를 건넸고, 많은 관객이 불통을 소통으로 바꿀 실마리를 스스로 깨달으며 일어섰다.

“저는 예술은 에너지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예술은 오로지 에너지예요. 현대인은 자연의 에너지와 연결되었던 끈을 놓쳐 버렸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잃었구요. 기술과 속도가 지배하는 도시에 살면서 자신의 내면과도 소통하지 않습니다. 완전하게 단절돼 있죠. 예술가로서 제 목적은 바로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창작을 하는 건데요. 제일 먼저 관객이 현재 이 순간에 깨어 스스로를 바라보게 만드는 겁니다.” 아브라모비치가 저널리스트 안희경에게 들려준 설명이다.(경향신문 2014년4월22일)

“팔이 잘려나간 나무들은 송글송글 피가 묻어있습니다/ 이 상처를 가라앉히느라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워야할까요/ 나는 내 작은 상처에도 꼬박 밤을 새운 적이 있습니다/ 흙비의 얼룩마저 나무들의 무늬가 됩니다/ 상처 많은 나무들이 껴안아주겠다고 두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탁한 바람들이 이곳에서 몸을 씻고 다시 도시로 돌아갑니다”

'사려니숲'의 마지막 연이다. 아브라모비치도 젊은 시절 진짜 피가 송글송글 솟는 섬뜩한 행위예술을 감행했었다. 아브라모비치를 만나기는 어려우나, 두 팔 벌린 나무들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엔 기필코 사려니숲에 가봐야겠다.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