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한 감독을 꼽으라면 배창호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배창호 감독은 1982년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당시 도시 빈민의 삶을 극명하게 그려내면서도 인간애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리얼리즘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안성기, 김희라, 김보연이 주연을 맡았다. 인천 출신 고 김성찬도 등장한다. 영화가 발표된 지 40년이 지나 '꼬방동네 사람들'을 소환하는 이유는 이 영화에 넝마주이와 고물장수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넝마주이는 폐지나 폐품을 주워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넝마주이를 했다. 이들은 패거리를 이뤘고 등에 망태기를 짊어지고 기다란 쇠집게를 사용하여 폐지나 폐품을 수집했다. 넝마주이는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정부의 관리 대상이 되면서 근로재건대로 불렸다. 근로재건대에 등록하지 않으면 넝마주이 일을 할 수 없었으며, 정부에서 지정한 복장과 명찰을 착용해야 했다. 어린 시절 어른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을 넝마주이가 커다란 망태기에 넣어 잡아간다는 말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넝마주이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얼마 전 인천일보는 '황혼의 설움, 폐지 수거 권하는 사회'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4회에 걸쳐 보도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을 직접 찾아 나서 노인들의 고달픈 삶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노인 빈곤 문제를 파헤쳐 큰 반향을 불러왔다. 인천지역 폐지 수거 노인들은 하루 평균 7.2시간 일한다. 8시간 넘게 일하는 노인들도 26.8%나 된다. 이들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19만7000원, 시급 2000여원이었다. 리어카 가득 폐지를 채우면 대략 100㎏이 나간다. 1㎏당 폐지값은 170원이다. 제값을 받으려면 멀리 대형 고물상에 가야 하는데, 대다수가 손수레나 유모차로 폐지를 수거하다보니 멀리 갈 수 없어 가까운 동네 고물상에 1㎏당 80원을 받고 폐지를 넘긴다. 이렇게 종일 폐지를 수집해 쥐는 돈은 고작 8000원 안팎이다.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주인공 태섭은 근로재건대(넝마주이) 출신이다. 근로재건대도 구역이 있다. 태섭은 구역 다툼을 하다가 상대편 패거리의 왕초를 살해하고 만다. 태섭은 꼬방동네에서 신분을 숨긴 채 숨어 산다.

공 목사는 폐지와 고물을 주우며 생계를 이어가는 목회자이다. 태섭은 공소시효가 엿새밖에 남지 않았지만 죗값을 치르려고 자수한다. 공 목사는 꼬방동네 공터에 교회를 세우고 주민들이 자립하도록 돕는다. 태섭, 공 목사의 고달픈 삶이 40년이 지나 노인들에게 이어져 오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데, 오늘날 폐지를 줍는 노인들에게도 희망의 불씨가 전해졌으면 한다.

/조혁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