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풍습을 삶터·인성과 연결 지어
▲ 김내혜 작가의 '淸潭(청담)' 전각.

'“우매한 국민들 마스크 착용 종용” … 국민의힘 “지켜봐야”' 며칠 전, 한 일간지 머리기사이다. 그 기사에는 '5·18은 폭동', '검정고시 자랑은 정상적으로 단계를 밟아간 사람들을 모욕', '가난 비하 발언', '긴급재난지원금은 개밥', 여당 찍는 자는 개돼지'에, 급기야 '김구 선생은 사람 죽인 인간'까지 보인다. 한 개인의 몰상식이란 말도 모자라지만 5000만 명 중에서 고른 젊은이란다. 여기에 헛구역질까지 넘어오게 만드는 저 발언들을 듣고도 80 노구의 총괄선대위원장이란 분은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다.” “어떻게 처리하려는지 모르기 때문에 말할 게 없다.” 했다니, '아니 먹은 최 보살'이 따로 없다. 결국 이 사람이 자진 사퇴를 하였는데, 그 당 대변인 말이 또 걸작이다. 자진 사퇴를 추켜세우며 “결단”이니, “용퇴”니 하는 말에 그저 모골이 송연할 뿐이다.

왜 이럴까? 세상을 경륜하고 백성을 구하겠다고 정치를 한다는 이들이다. 정치(政治)라는 것이 바름(正)이거늘. 청담 선생은 우리나라 지형의 특색을 들어 '국민성이 유하고 조심스럽다'하였는데 저 시절과 이 시절이 영 다른가 보다. 그래 작금의 정치꾼들, 선생의 호 '맑은 못(淸潭)'으로 세척을 했으면 한다.

이제 <택리지> '총론'과 '사민총론'을 거쳐, '팔도총론'으로 들어간다. '팔도총론'(八道總論)에서는 우리 국토의 역사와 지리를 개관한 다음, 당시 행정구역인 팔도 산맥과 물의 흐름을 말하고, 유명 지역과 관계있는 인물과 사건을 매우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각도 인심을 자연환경과 결부시켜 설명함으로써 '환경 결정론적' 입장에서 인간과 자연환경의 관계를 기술한 점이 특이하다.

앞부분에서는 '사람은 땅에서 난다'는 지인상관론(地人相關論)을 편다. 선생은 우리 국토의 시발을 중국 곤륜산(崑崙山, 중국 전설에서 멀리 서쪽에 있어 황허강의 발원점으로 믿어지는 성스러운 산)으로부터 찾았다. 곤륜산 한 가닥이 남쪽으로 뻗어 의무려산(醫巫閭山)이 되었고 요동벌을 지나 다시 솟은 게 백두산이라 한다. 선생은 곤륜산과 의무려산을 근거로 우리 국토의 신성함을 주장했다.

선생은 이 백두산 뒤쪽으로 내달려 조선산맥(朝鮮山脈, 태백산맥)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산이 많으며 들이 적다는 표현으로 한반도 지형의 특색을 설명하고는 그 영향을 받아 '국민성이 유하고 조심스러우나 도량은 작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반도의 국토 길이가 남북 3000리 동서 500리라고 우리 국토 길이를 처음으로 측정하였다.

다만 이 <택리지>를 읽으며 유의할 점이 있다. 비록 국토를 실증적으로 답사하여 얻은 귀중한 자료를 토대로 한 글이지만 벼슬을 잃고 떠도는 선비의 주관적인 심정도 이해하며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팔도의 서술은 중국과 국경을 잇대는 압록강 유역 평안도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를 지나 충청도, 경기도 순이다. 이제 각도에 대한 설명을 주마간산 격으로 요약한다.

선생은 평안도와 함경도는 썩 사람 살 만한 곳이 못 된다고 하였다. “서북 사람들을 벼슬에 임용하지 말라”는 태조의 명령과 사대부가 없다는 사실에 연유한 서술이다. 황해도는 부유한 자가 비교적 많고 선비는 적으나 살지 못할 곳은 아니라면서 흥미롭게도 세상에 일이 생기면 서로 차지하려 드는 요충지라 했다. 강원도에 관해서는 관동팔경을 꼽고 특히 횡성현은 맑은 기운이 있고, 덕은촌은 숨어 살만하다고 한다. 경상도는 지리가 가장 아름답다며 낙동강을 기준으로 좌도와 우도로 나눴다. 좌도는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지만 문학하는 선비가 많고 우도는 땅이 기름지고 백성이 부유하나 문학하는 이가 적다고 하였다.

전라도는 호불호가 가장 많다. 고려 태조가 차령 이남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 하였지만 조선에 들어와 이 금령이 없어졌다 하고 땅이 기름지고 바다에 연해 있어 물산이 풍부하고 인걸이 많다 한다. 또 산천이 기이하고 훌륭한 곳이 많아 한 번쯤은 모였던 정기가 드러날 것이라 하였는데, 이 시대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라는 것과 연결시키면 선생의 혜안이 자못 놀랍다.

충청도는 물산은 이남(二南, 영·호남)에 못 미치나 산천은 평평하고 곱다. 경성 권문세가들은 대를 이어 충청도에 전답과 주택을 마련한다고 지적한다.

경기도는 여주의 세종대왕 영릉에서 시작해 병자호란 등과 연계하였고 특히 강화도에 대해 꽤 길게 서술하였다. 먼저 자연적 조건을 들고 원나라를 피해 도읍지였던 점, 바닷길이 요충이라 하여 유수부로 삼은 내력, 병자호란과 강화도의 관계, 문수산성을 쌓은 사실 등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이 역시 요즈음의 강화도 발전과 견준다면 선생의 탁견이다.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선생의 주관적 견해이기에 이를 모두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서 사람들의 이동 경로에 천착하여 자연과 풍습을 삶터 및 인성과 연결 짓는 견해, 즉 '지인상관론'과 '환경결정론'은 분명 이 시대에도 논리성과 설득력을 갖췄음에 틀림없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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