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구한말 선교사로 이름난 아펜젤러 목사가 처음 인천을 찾아 머물렀던 때를 회고한 글에선 호텔이 언급된다. 바로 대불(大佛)호텔(현 중구 중앙동)이다. 그는 “호텔 방은 깨끗하고 편안했다. 테이블에 앉자 잘 요리되어 먹기 좋은 서양 음식이 나왔다. 무엇보다 종업원들이 일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해서 좋았다”고 했다.

아펜젤러 비망록을 보면, 서양식 호텔론 대불호텔이 국내 효시다. 그 설립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1885년 즈음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아펜젤러가 일행과 함께 제물포항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때(1885년 4월)를 짚어보아도 그렇다. 일본 해운업자가 당일 서울행이 어려운 여행객들을 위해 대불호텔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1883년 인천이 개항하자 서양인을 상대로 하는 근대식 숙박시설 필요성은 커졌다. 이에 따라 일본인이 호텔을 지어 커피를 판매하는 등의 영업전략을 구사했다. 대불호텔은 서양식 3층 벽돌건물로 침대가 딸린 11개의 객실을 갖췄다고 한다. 경인철도가 놓이기 전 배편으로 제물포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마차를 타고 경성까지 가려면 꼬박 하루를 허비해야 했다. 그래서 대불호텔에서 하루 이틀 쉬며 인천을 즐겼다.

이처럼 인기를 끌던 대불호텔도 1899년 경인선 개통과 함께 숙박수요 감소로 경영난을 겪었다. 결국 1918년 중국인에게 인수된 후 중화루란 요리집으로 바뀌었다. 중화루는 이후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다가 역시 운영난으로 1978년 폐업한 뒤 주차장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2011년 건물 신축을 위해 터파기 공사를 하던 중 빨간 벽돌 무더기와 기단 등을 발견했다. 문화재청 고증을 통해 대불호텔 터로 확인한 중구는 2018년 이 자리에 대불호텔 외관을 재현한 건물을 지어 전시관으로 만들었다. 전시관 3층엔 그 당시 상류사회 사회상을 보여주는 연회장 시설을 복원했는데, 그 무렵 호텔에 피아노가 있었다는 사실에 눈길이 간다.

이렇게 국내 최초(最初)인 호텔과 최고(最古) 피아노가 만났다. 이영근 한국사법교육원 이사장은 최근 현존하는 국내 최고의 피아노를 중구에 기증했다. 미국 소머사가 1887년 제작한 것으로, 앞서 문화재로 지정한 배재학당 내 그랜드 피아노보다 더 오래됐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고(故) 이문영 고려대 교수가 이 피아노를 소장하고 있었으나, 작고 뒤 이 이사장이 보관해 왔다. 구는 기증을 받은 피아노를 대불호텔 전시관에 놓아 시민들에게 새로운 '화음'을 선사할 예정이다.

중구는 인천항 개항 이래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풍부한 근대 문화유산을 자랑한다. 비록 한국전쟁 인천상륙작전으로 많이 잃어버렸지만, 그래도 간직해야 할 유산은 곳곳에 남아 시민들을 부른다. 이런 중구에 또 하나의 소중한 '유물'이 생겼다. 보존과 활용을 잘해 역사적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

/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