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봉국사 가는 길은 가파르다. 산 깊고 골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절도 아닌데, 걸어 오르면 곧 숨이 가빠온다. 봉국사 마당은 곧장 수정구 태평동 주택가로 이어진다.

봉국사가 터를 잡은 영장산은 남한산성(청량산)의 서남쪽 줄기다. 사실, 50여 년 전 태평동 일대가 '광주대단지'로 바뀌기 전까지 봉국사 근방은 깊은 산골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말 서울시가 오로지 땅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을 선택했다. 서울시는 가파른 언덕배기까지 불도저로 밀고 20평짜리 택지를 조성했다. 다행히 봉국사와 더 위쪽 망경암까지는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다만 졸지에 주택가 사찰이 되어버렸다.

봉국사 창건은 서기 1028년(고려 현종 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흥망을 거듭하다가 1673년 이번에는 조선의 현종이 일찍 세상을 떠난 두 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절을 중창하고, '봉국사'라 명명했다 전해진다. 최초 창건으로 따지면 천년 고찰이 맞고, 중창 시기부터 셈해도 350년이다. 성남시를 통틀어 가장 유서 깊은 장소다.

근현대에 들어 봉국사는 1920년대에 한 번, 1958년에 한 번 중수됐다. 1974년에는 아미타불을 모신 대광명전을 해체 복원했다. 봉국사의 주 법당인 대광명전은 외관이 장중하고, 조선 후기 불전 형식을 잘 간직한 건물이어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대광명전 안에도 문화재가 두 점 더 있다. 주존불 목조아미타불상이 조선 후기 불교 조각의 특징을 보여주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09호이고, 대광명전 후불도(後佛圖) 또한 19세기 후반 불화(佛_)의 특징과 인물묘사와 색채 사용에서 경기 지방 특생을 보여주기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01호다.

경기도는 봉국사 대광명전 건물이 국가 보물로 지정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지방문화재로 한 번 지정되면 국가 보물이 될 수 없었으나, 60년 만에 보물 지정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좌우 기단의 사자를 닮은 상서로운 짐승 조각이 눈길을 사로잡는 대광명전에 좋은 소식이 들리기를 기대한다.

50년 전 '광주대단지 폭동'과 성남의 현대사를 헤아리면, 봉국사가 감당해온 역할의 부피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파른 태평동 주택가 언덕길을 힘들여 올라온 서민들에게, 울타리도 없는 봉국사 경내는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는 공간으로 이름이 높다. 절 마당에 2017년 설치된 부처님 조각상은 봉국사가 전통과 현대성의 통섭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상징하는 듯하다.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부처님 무릎에, 어깨 위에 어린이들이 제멋대로 올라가 있고, 한 아이는 부처님 입술을 잡아당기고 있다.

 

/양훈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