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 '오징어게임'은 21세기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의 인간)의 세계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1938년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사람),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만드는 사람)에 이어, 놀이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해 주는 특별한 행위라는 의미에서 호모 루덴스라는 인류를 지칭하는 용어를 만들었다. '오징어게임' 속 놀이는 '허구적인 것으로, 일상생활 밖의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규칙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어, 놀이하는 자를 완전히 사로잡는 행위'라는 놀이의 정의에 부합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로제 카유아는 위 이론을 발전시켜 저서 <놀이와 인간>에서 '놀이의 4대 요소'를 분석했다. 먼저, 아곤(Agon)은 그리스어로 경쟁을 뜻하며, 참가자들은 게임에서 승리함으로써 성취감과 살아남은 안도감을 느낀다. 다음으로, 미미크리(Mimicry)는 영어로 모방을 뜻하는데, 참가자들은 파스텔 톤으로 꾸며진 놀이터 미끄럼틀 밑에서 어린아이로 돌아가 침을 발라가며 달고나를 만든다. 나아가, 알레아(Alea)는 라틴어로 요행을 가리키는데, 구슬치기의 홀·짝수의 우연성은 참가자들의 능력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일링크스(Ilinx)는 그리스어로 현기증으로, 줄다리기에서 앞으로 세 발자국 이동함으로써 상대의 균형을 잃게 한 순간과 유리 징검다리 게임에서 앞으로 한 칸 나아갈 때 현기증을 느낀다.

나아가 '오징어게임' 곳곳에서 놀이의 본질적인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프론트맨의 우아하고 추상적인 검은 가면은 사회적 역할을 숨기고 간헐적으로 불쑥 출현하여 경건한 공포심을 일으킨다. 이와 대비되는 핫핑크색 제복은 규칙의 공정한 집행만을 담당하는 이성적이며 냉정한 존재로서의 권위를 상징하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표정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지만, 그들의 가면은 '○△□'가 그려져 있어 모서리 수에 비례하여 계급이 정해진다. 한편 핫핑크색과 보색관계인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참가자들은 번호만으로 대표되는 익명성을 갖는다. 참가자가 죽을 때마다 5만원 지폐가 채워지는 천장의 커다란 황금빛 돼지 저금통은 찬란한 태양이다. 일확천금의 매력은 사람을 도취시킨다. 정상적인 수단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456억은 참가자들의 운명을 바꿔 놓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 속 몇몇 게임들은 이미 전 세계에서 보편적인 놀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일본이 '달마가 넘어졌다'에서 유래하였다고 우기나, 북·남미,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 존재하는 놀이이다. 영어로는 red light, green light, one, two, three! '줄다리기'는 우리나라에서 농한기에 풍년을 기원하여 정월 대보름에 즐기던 민속놀이나, 16세기 유럽에서는 스포츠로 발전하여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에서 1920년 제7회 엔트워프올림픽까지 육상의 한 종목이었다. 2015년 유네스코는 한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이 공동으로 등재 신청한 줄다리기(tug of war)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이렇듯 놀이는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른에게도 놀이는 존재하고, 사람은 유희의 인간이다. 그리하여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보편적 문화인 놀이를 극단의 자본주의 속에서 비틀어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음에도, 우리의 현실이 '오징어게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동서, 남녀, 노소 구분 없이 전 인류의 공감을 가져온 것이다.

 

/김현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