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인천은 예로부터 물을 구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지금이야 수돗물이 콸콸 나와 물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동네마다 수원(水源)이 부족해 '대표 우물'을 파서 식수로 쓰며 생활을 했다. 그런데 물맛은 시원치 않았다. 바닷가와 접해서인지 수질이 별로 좋지 못했다. 일찍이 인천에 수돗물이 공급된 까닭도 거기에 있지 않나 싶다.

인천의 '수도 역사'는 1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통감부는 1906년 수도국을 신설해 인천 송현동∼서울 노량진 간 상수도 공사를 벌여 1908년 배수지를 만들었다. 이어 노량진 수원지 정수시설을 1910년 10월 준공하고, 그 해 12월1일부터 서울∼인천 간 급수를 시작했다. 개항(1883년) 이후 급증하는 인구와 선박 등으로 물을 확보하느라 무던히 애를 먹자, 이런 조치를 취했다고 전해진다. 당시엔 수도관로가 제한돼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갔다.

수돗물 개통 후엔 '수도국산(水道局山)'이란 이름으로 널리 불렸다. 야트막한 산 위에 있던 수도시설로 인해서다. 현 동구 송현동과 송림동에 걸쳐 있는 수도국산은 송림산(松林山)의 별칭. 본디 언덕배기 한적한 소나무 숲이었다가 수돗물과 함께 변신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인천 최초 상수도 시설인 '송현배수지'는 2003년 10월 인천시 문화재 자료 제23호로 지정됐다.

수도국산 주변은 '달동네'로도 유명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은 일본인에게 상권과 일자리를 잃으면서 송현동·송림동 등지 마을로 찾아들었다. 가난한 이들의 보금자리로 변모한 수도국산엔 한국전쟁 후 피란민이 대거 몰려들었다. 점차 판자집들이 늘면서 산비탈에선 3000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일대를 개발하면서 달동네 또한 사라져갔다. 이렇게 상수도 역사는 깊지만, 인천은 수돗물로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2019년 '붉은 수돗물'과 2020년 '수돗물 유충' 사태에 빠져 시련을 겪어야 했다. 시민들은 수돗물을 엉망으로 관리했다며 인천시에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시의 무능과 무기력한 행정을 탓했다. 시는 사태 이후 대대적인 시설 개선과 수돗물 혁신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지난달엔 수돗물에 대한 국제표준기구 식품안전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았다.

시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수돗물 이름 바꾸기에도 나섰다. 결국 '미추홀참물'에서 '인천 하늘수'로 교체했다. 인천 하늘수는 지난 14일 시청에서 열린 시민 대토론회 온라인·현장 투표에서 1위를 기록했다. '세계적인 국제공항을 보유한 인천, 하늘이 내려준 깨끗한 물'이란 뜻을 담았다.

이름만 바꾼다고 과연 만사형통할까. 인천시는 정녕 시민을 '하늘'로 여겨 소통을 더욱 강화하길 바란다. 그래야 비로소 수돗물 행정에도 숨통이 트이리라.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