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도 사치하던 시절, 절약을 논해
▲ 김내혜 전각 작가의 '朴齊家(박제가)' 전각. 박제가의 호는 초정(楚亭)이다. 이 호에는 서얼로서의 슬픔이 담겨 있다. 선생은 <정유각집> 권5에 실린 '기족종질(寄族從姪)'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려서 초나라 굴원의 <이소경>(離騷經)을 애독해서 호를 초정이라고 하였다. 그 시는 대개 우울하고 감개한 소리가 많았다. 날은 저물고 길은 막힌 어떤 세계와 같았다.” <이소경> 외에도 초나라 시들은 대부분 비애미가 흐르고 우울하다. 선생이 초정을 호로 삼은 이유를 살펴보면 서얼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이 너무 많다.” 말을 타고 대선 출마 퍼포먼스를 진행한 이의 말이란다. 저이의 행동에는 동의 못하지만, 저 말은 정말 공감에 또 공감을 한다. 실례를 들자면, 일 안하고 돈 받는 국회의원·영혼없이 월급만 받는 공무원·말(글)과 행동이 각각 따로인 교수와 선생·투기로 재산 불리는 파렴치한…. 서둘러 마침표를 찍는다. 계속하다가는 초정 선생의 말을 못 들어서다. 이들이 모두 29살짜리 조선의 서얼 박제가가 몹시 꾸짖는 '좀벌레(사대부:도둑)'들이다.

“저 놀고먹는 자들은 나라의 큰 좀벌레입니다. 날이 갈수록 날로 먹는 자가 불어나는 이유는 사족(士族)이 나날이 번성하는 데 있습니다. 그들을 처리할 방법이 반드시 따로 마련되어야 합니다. 신은 수륙 교통요지에서 장사하고 무역하는 일을 사족에게 허락하여 입적하라고 요청합니다. 밑천을 마련하여 빌려주기도 하고, 점포를 설치하여 장사하게 하고, 그중에서 인재를 발탁함으로써 그들을 권장합니다. 그들이 날마다 이익을 추구하게 하여 점차 놀고먹는 추세를 줄입니다. 이게 현재 사태를 줄이는 데 일조할 것입니다.” 이 글은 선생이 주장한 '사기삼폐설'(四欺三弊說) 중 사대부의 기만이다. '사기'는 자기를 속이는 네 가지 행위고 '삼폐'는 세 가지 폐단이다. 자기를 속이는 네 가지 행위는 이렇다. ①인재를 배양하고 재물을 쓸 생각은 않고 후세로 갈수록 세상이 침강되어 백성이 가난해진다고 하는 '나라의 기만', ②지위가 높을수록 여러 일을 천시하여 아랫사람에게 맡겨버리는 '사대부의 기만', ③글의 속뜻도 모르면서 과거시험만을 위한 문장에 정신을 소모하며 천하에 볼 만한 서적이 없다는 '공령(功令, 과거공부)의 기만', ④서얼이라 하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친척인데도 노예처럼 대하면서 천하를 오랑캐라 여기고 스스로 예의니 중화니 하는 '습속의 기만'이다.

또한 세 가지 폐단은 다음과 같다. ①국가가 등용시킨 사대부에게 국가가 만든 법률을 적용하지 않는 '국가의 폐단', ②인재 등용의 관문인 과거제도가 오히려 인재 등용의 길을 무너뜨리는 '과거의 폐단', ③유학자를 존숭한다며 세운 서원이 병역을 기피하고 금하는 술이나 빚는 '서원의 폐단'이다.

필자 또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신(新)사기삼폐설'을 못 쓸 것은 아니나, ④적자(嫡子)가 아닌 서자(庶子)로서 삶의 괴로움을 적어 놓은 '습속의 기만'만 본다. 선생은 서자를 '불치인류(不齒人類, 사람 축에 들지 못함)'요 '세세지색(世世枳塞, 대대로 벼슬길에 나가지 못함)'이라 하였다. 아래 글은 천한 서얼(자)로 태어난 선생의 삶 그대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자가 있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사촌 간에 서로 종으로 부리는 자가 있고, 머리가 누렇고 등이 굽은 노인을 쌍상투 머리를 땋은 아이의 아랫자리에 앉게 하는 자가 있으며 할아버지, 아버지 항렬이건마는 절하지 아니하며 손자뻘, 조카뻘 되는 자가 어른을 꾸지람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 버릇이 점점 교만하게 되면서 천하를 오랑캐라 무시하며 자기야말로 예의를 지켜 중화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것이 우리 풍속이 자기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오늘날도 저 조선조 500년 동안 지속된 악의 연대기인 '습속의 기만'이 살아 갈등을 빚고 있다. 적자와 서자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나뉘어 악의 연대기를 잇는 '신습속의 기만'이다. 바로 갈등 1위 오명국이 이를 증명해준다.('빈부 갈등:91%, 정당 지지자 간 갈등:91%, 진보 vs 보수 갈등:87%, 세대 갈등:80%, 남녀 갈등:80%, 대도시 엘리트 vs 노동자 갈등:78%, 종교 갈등:78%, 대졸 vs 고졸 갈등:70%'.-출처 https://www.ipsos.com/en/culture-war-around-the-world)

선생의 말은 아래와 같이 이어진다. 선생은 실학자들마저도 천편일률적이었던 사치를 배격하는 금사론(禁奢論)을 통박하였다. 앞 '3회'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사치를 배격하는 것은 조선인의 보편적 사고였다. 성호 이익조차도 <성호사설> '치속'(侈俗)에서 “옛날에는 사치가 욕심에서 생겼는데, 후세에는 사치가 풍속에서 생기고 욕심이 사치에서 생긴다”고 할 정도였다. 후일 근대적 개혁운동인 갑신정변을 이끈 김옥균(金玉均, 1851-1894)조차도 '치도약론'(治道略論)에서 오늘날 힘써야 할 일을 첫째, 인재를 쓰는 일 다음에 '재물 쓰기를 절약하고 사치를 억제하는 일'이라고 할 정도였다. 지금도 재물과 사치를 배격하는 '금사론'이 삶의 바른 자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선생은 우물물을 쓸수록 물이 맑게 솟는다는 용사론(容奢論)을 주장하였다. 선생은 수요와 억제·절약과 검소가 경제 안정에 필요하다는 통념을 물리쳤다. 오히려 생산 확충에 따른 충분한 공급이 유통 질서를 원활하게 한다는 경제관이었다. 가히 혁명적인 주장이다.

“현재 국사를 논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치가 날로 심해진다고 말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신의 관점으로 보기에 그들은 근본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우리나라는 반드시 검소함으로 인해 쇠퇴하게 될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화려한 비단옷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에는 비단을 짜는 베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여인의 기능이 피폐해졌습니다. 노래하고 악기 연주하는 것을 숭상하지 않기 때문에 오음과 육률이 화음을 이루지 못합니다. 부서져 물이 새는 배를 타고, 목욕을 시키지 않은 말을 타며, 이지러진 그릇에 밥을 담아 먹고, 진흙 방에 그대로 살기 때문에 공장(工匠)과 목축과 도공 기술이 끊어졌습니다. 농업은 황폐해져 농사짓는 방법이 형편없고 상업을 박대하므로 상업 자체가 실종되었습니다. 이런 실정을 고치려고 생각하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민간 백성들이 대문을 높이 세우는 것이나 헐뜯고 시정에서 가죽신을 신는 백성이나 잡으려 하고, 마졸이 귀덮개를 하는 행위나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게 지엽적인 것이나 건드리는 게 아닙니까?”

(지면 관계로 선생의 '용사론'은 8회에 이어진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