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담아냈던 민초들의 저항


수원시립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11월7일까지 1970~80년대 민중미술 작품 189점 공개
▲ 이윤엽 작 ‘대추리에서 세월호까지’.

풀이 눕는다./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수영 시인이 우리 민초들의 저항정신을 빗대 표현한 시 '풀'의 구절이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역사의 치부로 남겨져 버린 격변의 시대에 민중미술로 사회적 고민을 대변하던 이들이 있다. 이들은 당시 미술 소집단을 양산했고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발표하게 된다. 1970~80년대 찢기고 불태워졌으며 빼앗겨버렸던 민주주의를 2021년 다시 한 번 되찾는 전시가 수원에서 열리고 있다.

수원시립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 협력기획전 '바람보다 먼저'를 오는 11월7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인다.

전시 '바람보다 먼저'는 1990년대 초반까지 수원을 비롯한 경기, 인천,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벌어졌던 사회 참여적 미술운동의 양상을 조망하는 전시다. 전시에서는 노동과 분단, 여성 문제들을 다룬 41개 팀 작가들의 회화, 설치 작품 189점을 공개했다.

전시 제목 '바람보다 먼저'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존재였던 김수영 시인의 '풀'에서 착안했다. '풀'은 끈질긴 생명력과 고난과 시련을 능동적으로 타개해왔던 우리 민중의 주체성을 집약하는 표현으로 그려지고 있다.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구성됐다. 1부에서는 민중미술에 태동이 됐던 수원 소집단 '포인트'를 중심으로 11명 작가의 궤적을 더듬는다. 2부 '역사가 된 사람들'에서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서울, 수원, 경기, 대구, 광주 등의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맹렬히 싸워왔던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1부에 소개된 '포인트'에서는 수원 민중미술 운동의 전사(戰士)로 표현되면서 권용택, 박찬응, 손문상, 신경숙, 이억배, 이오연, 이윤엽, 이주영, 임종길, 최춘일, 황호경 11명 작가의 작품 13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1979년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수원 미술의 실천적 동기를 마련한 포인트, 시점시점, 목판모임 '판', 수원문화운동연합, 미술동인 '새벽', 노동미술연구소 등 소집단 활동 당시 아카이브작이 소개된다.

특히 수원에서 '노동미술연구소' 창립에 가담했던 작가 신경숙은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소집단 당시 작품들을 최초로 공개한다. 아울러 전시에서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억배, 박찬응, 신경숙 등 작가들의 최근 작품들도 함께 전시한다.

2부에서는 1980년대 광주, 민주주의를 위해 그려졌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이응노, 윤석남, 이상호, 성효숙, 정정엽, 홍성담, 김봉준 등 작품을 통해 맹렬히 저항했던 걸개그림, 벽화, 고무판화와 같은 민중미술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동맹의식만큼 투철하고 맹렬했음을 시사한다. 그들의 헌신적인 맹렬함 뒤에는 화려한 '영웅적' 수식어구가 붙어있지 않는다. 이처럼 '이름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암흑이 걷히고 새로운 세계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라고 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