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출신…안산 대부도에 작업실
흑·백만 사용 그림에 밝은 메시지
“인생도 반대 상황 인지할 때 완성”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있는 법이죠. 저는 어둠으로 희망을 그립니다.”

안견이나 정선이 오늘날 도시 풍경을 그렸다면 이와 같을까?

오로지 '농담(濃淡)'으로만 도시 풍경을 담아낸다. 어디 하나 이를 데 없는 세밀함이 먹과 붓으로만 그린 그림이 맞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온통 흑과 백으로 채워진 장지 위는 무겁고 낯선 풍경에 쌀쌀하기까지 하지만 경기창작센터 선정 입주 작가 임철민(33) 작가는 '희망'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그 속내가 궁금했다.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있잖아요. 모든 인생이 그러하듯 반대의 상황을 인지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즐겁고 행복하다는 감정은 상반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보는데, 저의 작품이 다소 무겁고 어둡게 느껴지지만 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희망적이고 밝음을 표현하기 위해 수묵이라는 소재를 쓰게 됐죠.”

▲ 임철민 '주관적인 풍경-경희궁'./사진제공=경기창작센터
▲ 임철민 '주관적인 풍경-경희궁'./사진제공=경기창작센터

임철민 작가는 경험을 오브제로 중첩된 풍경을 수묵 기법을 통해 표현하는 독창적인 화풍을 가진 작가다. 주로 여행지에서 목격한 인상적인 스폿(spot)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구성한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을 찾아 다양한 경험과 기억을 작품에 담아냈죠. 그렇게 한 작업이 '주관적인 풍경 시리즈'였습니다. 지금은 해외로 나갈 수 없는 여건이다 보니 제가 몸담은 지역으로 눈을 돌리게 됐죠. 어느덧 안산이란 지역은 고향과도 같은 지역이 됐습니다.”

그는 지난해 경기창작센터 입주 작가로 선정된 이후 첫 작업실을 창작센터가 있는 안산 대부도에 얻었다. 덕분에 안산 지역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부쩍 느끼게 되면서 지역민들의 인터뷰를 통한 일종의 아카이빙 작업을 최근까지 이어오고 있다.

“시흥에서 나고 자랐지만 가까운 안산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죠. 이번 기회를 통해 안산 지역민들과 구술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그들의 경험이 담긴 장소를 찾아 풍경으로 풀어내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업하면서 안산 지역에 상당한 애착이 생겨났고 이젠 지역민 못지않게 이 지역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다수의 청년에겐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특히 예술을 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임 작가 역시 불안감, 막막함의 갈급함으로 붓을 쥐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둡기 때문에 비로소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다만 그것을 아직은 알지 못하는 것뿐이라 생각해요. 저편 희미한 빛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에 도달해 있더라고요. 변화를 멈추지 마세요. 변화를 멈추는 건 죽음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