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를 신앙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이 만들고 경험한 제도 가운데 자본주의 만큼 효용성 있는 것은 드물다고 강조한다. 인류에게 번영을 가져다준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라고 찬양하기도 한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느니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편이 더 쉽다”고 말했다. 섬뜩한 표현이다. “우리가 여러 세대에 걸쳐 지켜본 결과 자본주의 힘은 완전무결한 감독관, 혹은 적어도 탁월한 감독관”이라고 극찬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어 자본주의는 신자유시장 경제구조와 결합되면서 불평등과 불공정, 부도덕성 등의 문제가 심화됐다. 근래에는 다른 차원에서 자본주의 위기가 거론되는데, 인류 최대 현안이 된 기후위기와 관련 있다. 이른바 '화석자본주의'다. 동식물이 땅속에 묻혀 탄화돼 생성된 광물을 화석연료라 하는데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이 이에 해당된다.

화석연료는 문명 발전과 근대화에 큰 기여를 했다. 서구 자본주의는 화석연료의 힘 덕분에 지배력을 갖게 됐다는 견해까지 대두된다. '화석'과 '자본주의'가 얼마나 깊이 얽혀 있는지, 서로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묘사하는데 화석자본주의는 아주 유용하다.

그러나 화석연료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돼 인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9일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화석연료와 산림벌채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지구를 질식시키고 수십억명을 즉각적인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각 나라는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청정에너지 개발을 꾀하고 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해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 속성과 관련이 있다. 나오미 클라인은 “자본을 가진 세력은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더 많은 공간, 힘, 자유를 요구할뿐 다른 분야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데 자본주의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자본주의 시장은 누구에게나 성공 가능성이 열려 있고, 성공이 모두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고 강조하면서 여러 세대에 걸쳐 불평등을 정당화시켜 왔다. 그 대가로 우리에게 익숙한 상위 1%, 즉 소득 불평등이 공정한 불평등으로 둔갑됐다.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기후를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상은 시장만능주의가 기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자본주의는 가장 원초적인 명제에 가장 비효율적인 답을 내놓고 있다. 이상기후와 자연재해가 전례 없는 속도로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이 시대를 얼마나 잘 버텨낼 수 있을까.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