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후보들 사이에 때아닌 '적통' 논란이 일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서나 들을 수 있는 '적자' '서자' '맏며느리'라는 말이 거침없이 등장했다. 서열 중심의 가족관계를 따지는 한국민의 정서를 의식한 정치적 수사(修辭)라면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상대 후보 공격용으로 쓰인다면 얘기가 다르다. 당장 “종친회 대표를 뽑자는 거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이낙연 후보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모시고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 당대표를 지냈다는 점에서 본인이 적자라고 주장한다. “김대중·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저에게 학교였다. 저는 그분들로부터 정치를 배우고 정책을 익혔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정세균·추미애·김두관 후보까지 자신이 민주당 적자라고 강조한다.

적자가 4명이나 되니 적통 논쟁이 불붙을 수밖에 없다. 김두관 후보는 “이낙연 후보가 적자라니, 서자되기도 어렵다”고 했고, 정세균 후보는 “소위 말하는 적통 적자는 (후보를 사퇴한) 이광재와 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비주류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혈통으로 따지면 나는 서자”라며 빈정거리듯 말했고, 추미애 후보는 “나는 민주당의 맏며느리”라고 강조해 족보가 복잡한 집안임이 입증됐다. '적자' '서자' 같은 말을 양념처럼 사용한다면 웃어넘길 수 있지만, 상대에 대한 공격용으로 쓰인다면 집안망신이다.

조선에 이어 백제가 소환됐다. 이재명 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백제, 호남 이쪽이 주체가 되서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예가 한번도 없었다”면서 “근데 지금 그때(지난해) 당시를 보니까 이낙연 대표는 전국에서 골고루 지지를 받고 있어서 이분이 나가서 이길 수 있겠다. 이긴다면 이건 역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낙연 후보는 “호남 출신 후보의 확장성을 문제삼은 중대한 실언”이라고 규정했고, 이낙연 캠프 배재정 대변인은 “이 지사는 이낙연 후보의 약점이 호남이라는 '호남 불가론'을 내세우는 것인가”라고 힐난했다. 역시 호남 출신인 정세균 후보도 “백제라니, 지금이 삼국시대인가”라며 “용납못할 민주당 역사상 최악의 발언”이라고 가세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시기를 거치며 민주당에선 지역주의는 강을 건넜다.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다”며 중재에 나섰지만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이재명 지사는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면밀히 살펴보니 이재명이 이낙연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덕담을 한 수준이다. 정치판 참 묘하다. 김두관 후보가 한마디 했다. “(이낙연 측의 해석은) 악마의 편집처럼 보인다. 아무리 경쟁이지만 떡 준 사람 뺨 때리면 되겠나.”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