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수통일?…화합의 식사 '평양냉면' 잊었나
▲ 냉랭한(_빙) 임금님의 명령(令령)은 추상같아서 등골이 오싹하다(冷랭). /그림=소헌

문 밖에만 나서도 이내 굵은 땀 줄기가 정수리부터 등줄기까지 개울을 이룬다. 중복中伏과 대서大暑를 지나며 불볕더위가 절정을 보여 폭염특보가 발효되었다. 연일 낮 최고기온이 38도까지 오르면서 도시인들은 밤새 25도를 넘는 열대야로 인해 잠을 설칠 수밖에 없는데,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다짐했다. 내일은 꼭 화평동 '세수대야 냉면'을 먹고 말리라.

한강토 남쪽에 전주비빔밥이 있다면 북쪽에는 평양냉면이 있다. 평양냉면(랭면)은 메밀국수 사리에 차가운 고기 국물이나 동치미 국물을 부은 뒤 편육이나 삶은 달걀로 만든 고명과 무김치_오이_파_배 등을 얹어 낸 음식이다. 예전에는 꿩고기 육수를 썼으나, 지금은 쇠고기_돼지고기_닭고기 등으로 육수를 만든다. 평양의 옥류관, 고려호텔, 창광원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맛집(?)이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북남수뇌회동)에서 채택한 ‘판문점 선언’만큼이나 인기를 누렸던 ‘김정은 어록’이 떠오른다. 그가 회담 시작 전에 文 대통령에게 냉면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평양에서 어렵게 가져온 평양냉면... 멀리서, 아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_

평양냉면(平壤冷麵) 평양에서 가져온 냉면으로 화합을 이루다. 당시 필자가 속한 모임에서도 회담을 축하하며 기뻐했는데, 누군가 꺼낸 ‘평양냉면’을 화두로 4행시 잔치가 벌어졌다. 내 차례가 되었다. 망설임 없이 7언시로 응수했으며, 압운은 ‘홍익인간’으로 하였다.

 

平 - 平和統一意志弘 평화통일의지홍(弘)

壤 - 壤土大韓死守益 양토대한사수익(益)

冷 - 冷語嘲笑賣國人 냉어조소매국인(人)

麵 - 面張牛皮非人間 면장우피비인간(間)

(평화통일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크고 넓어, 양토로 이루어진 한강토를 죽음으로 지키겠다는 의지가 넘쳐나는데, 냉정하고 쌀쌀한 말로 조롱하고 비웃는 매국노들이 있으니, 면상에 소가죽을 발랐는지 너무도 뻔뻔스러워 사람이 아니로다.)

 

冷 랭/냉 [차다 / 인정이 없다]

①_(얼음 빙)은 물(_)이 얼어 ‘얼음’이 되면서 획수가 하나(_) 빠져나갔다. 본자는 _(빙)이다. 봄이 되면서 얼었던 강(_천)이 녹아 얼음(人人)이 떠내려가는 모양이다. ②_(빙)은 부수로 사용하고 단독으로는 氷/_(빙)을 쓴다. ③令(령)은 사람들을 모아놓고(_집) 굴복(_절)시키며 명령을 내리는 글자다. ④냉랭한(_빙) 임금님의 명령(令령)은 추상같아서 등골이 오싹하다(冷랭).

 

麵 면 [밀가루 / 국수]

①麥(보리 맥)은 한 포기의 보리를 그렸다. 여기서 _(치)는 뿌리를 표현했다. ②面(얼굴 면)은 머리털(_면)과 얼굴의 윤곽(_)과 눈(目)을 표현한 글자다. ③국수(麵면)는 우리가 먹는 밀가루(麥맥)로 만든 면을 대표하는 얼굴(面면)이다. ④面(면)은 麵(면)의 약자나 간체자로 쓴다.

 

이준석 대표가 통일부 폐지와 ‘흡수통일’을 언급한 가운데, 미국 연방하원은 미국과 북한의 이산가족상봉 법안을 통과시킨 후 관련 결의안을 처리했다. 맷돌을 돌리려는데 어처구니가 빠진 실정이다. 우리민족의 목숨이 누구의 손에 달렸는가? 평양에서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여 통일을 앞당기자’라고 한 말을 잊었는가? 냉면冷麵에는 한민족의 다섯 가지 색깔을 담은 고명을 얹는다. “북남은 본래처럼 하나가 돼 끝없는 번영을 누릴 것이다.” 판문점 선언(김정은 위원장).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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