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설 유행하니 너도나도 지관 행세
▲ '기산풍속도(箕山風俗圖-상제 풍수 데리고 간산(看山)가는 모양'. 기산(箕山)은 근대 개항기 화가 김준근(金俊根)이다. 19세기 말 부산·원산 등의 개항장에서 그림을 그려 주로 서양인들에게 판매하였다. 그의 풍속화는 독일·프랑스·영국·덴마크·네덜란드·오스트리아·러시아·미국·캐나다·일본 등 전 세계 20여 곳의 박물관에 1500여 점이 전한다. '간산'은 묏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산을 돌아본다는 의미이다. 그림 가운데 끝이 뾰족하고 갈대로 만든 상제 모자를 쓴 이가 망자의 남편이다. 관례대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 뒤 새초롬한 눈의 젊은이는 머리를 풀어 슬픔을 표시했다. 왼손에 버드나무(혹은 오동나무) 지팡이를 든 것을 보니 어머니 상이다.(아버지는 대나무 지팡이) 오른손에 쥘부채를 들고 장죽을 문 이가 지관(地官, 풍수)이다. 표정하며 몸짓이 사뭇 거만해 보인다.
▲ '기산풍속도(箕山風俗圖-상제 풍수 데리고 간산(看山)가는 모양'. 기산(箕山)은 근대 개항기 화가 김준근(金俊根)이다. 19세기 말 부산·원산 등의 개항장에서 그림을 그려 주로 서양인들에게 판매하였다. 그의 풍속화는 독일·프랑스·영국·덴마크·네덜란드·오스트리아·러시아·미국·캐나다·일본 등 전 세계 20여 곳의 박물관에 1500여 점이 전한다. '간산'은 묏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산을 돌아본다는 의미이다. 그림 가운데 끝이 뾰족하고 갈대로 만든 상제 모자를 쓴 이가 망자의 남편이다. 관례대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 뒤 새초롬한 눈의 젊은이는 머리를 풀어 슬픔을 표시했다. 왼손에 버드나무(혹은 오동나무) 지팡이를 든 것을 보니 어머니 상이다.(아버지는 대나무 지팡이) 오른손에 쥘부채를 들고 장죽을 문 이가 지관(地官, 풍수)이다. 표정하며 몸짓이 사뭇 거만해 보인다.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질문 하신 분께서 변하시면 됩니다.” 코로나19의 위세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도 얼마 전 외부 강의가 들어와 나들이를 하였다. 경상도 예천에서 강의는 '연암과 다산에게 배우는 선비 사상'이다. 강의 말미에 한 분이 질문을 하셨다. “그래, 교수님 말씀이 모두 맞아요. 맞는데, 그런다고 세상이 변합니까?”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세상이 연암과 다산, 이 란에서 연재하는 실학자들의 말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자명한 진리 아닌 진리를. 하지만 그래도 저 이들 글줄이 이 시대 우리의 갈 길이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진리임도 안다.

말을 하자니 말이 꼬리에 꼬리를 잡지만 이만 각설하고, <북학의> '외편' 과거론 1에 이어지는 재부론을 본다.

“재부론: 재물을 잘 다스리는 자는 위로는 하늘의 때(天時)를 놓치지 않고, 아래로는 지형의 이로움(地利)을 잃지 않으며, 중간으로는 사람이 해야 할 일(人事)을 잃지 않아야 한다. 도구가 편리하지 못하여 남들이 하루에 하는 것을 나는 한 달이나 두 달 걸려 한다. 이는 바로 하늘이 준 기회를 잃는 것이다. 또 밭을 갈고 씨앗 뿌리는 것을 계획 없이 대충하여 비용만 많이 들어가고 수확이 적게 된다면 이는 지형의 이로움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물자가 제대로 유통되지 못하고 놀고먹는 자가 나날이 많아지게 되면 이는 바로 인사를 잃는 것이다.

통강남절강상박의(강남, 절강과 통상하기를 제의하는 의론): 우리나라 사람은 의아심이 많고 두려움을 잘 타며 기질이 트릿(맺고 끊는 데가 없이 흐리터분하고 똑똑하지 않음)하고 견식이 미개하다.

북학변 2: 지금 우리나라 사람은 아교와 옻 같은 속된 꺼풀이 덮여 있어서 뚫지 못한다. 학문에는 속된 학문 꺼풀이 있고, 문장에는 속된 문장 꺼풀이 있다. 큰 것은 차치하고라도 수레로 말하면 곧, '산천이 험하고 깊어서 사용할 수 없다'는 말과 '산해관에 걸린 현판은 이사(李斯) 글씨인데 십리 밖에서도 보인다'는 말이라든가, '오랑캐는 머리를 땋으면서 부모가 있고 없음에 따라 한 가닥 혹은 두 가닥으로 하여, 예전 다방 머리 제도와 같게 한다'는 따위 엉터리 소문은 낱낱이 거론할 수조차 없다. 나와 친한 사람이라도 내 말은 믿지 않고 저런 말을 곧이듣는다. 나를 잘 안다는 자가 평소에는 나를 떠받들다가도 한 번 나를 나무라는 당치도 않는 말을 전해 듣고는 평생에 믿던 바를 크게 의심하여 끝내 그 말을 믿는 것과 똑같다. 그들이 내 말을 믿지 않고 저런 엉터리 말을 곧이듣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은 호(胡)라는 한 글자로 중국 천하를 뭉개버리려 한다. 내가 '중국 풍속이 이와 같이 좋다'하였다. 그들이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크게 다른 까닭에서다. 사람들에게 시험 삼아 '만주 사람은 말소리가 개 짖는 듯하며, 그들의 음식은 냄새가 고약하여 가까이 할 수 없다. 뱀을 시루에 쪄서 씹어 먹고 황제의 누이동생은 역졸과 몰래 통하여 가끔은 가남풍(賈南風)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하다'하면, 그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말을 옮기노라 분주하다.”

꽤나 독설이다. 사실 말이지만 저 시절보다 이 시절이 낫다고는 하지 못한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만이 전부라 여기고 바닷물을 조개껍데기로 되질하려는 사람들도 꽤나 본다. 오로지 맘몬(Mammon, 재물)만을 신주처럼 섬기며 휘뚜루마뚜루 행동하는 인간실격자들도 부지기수다.

나머지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넘기고 '가남풍'만 보겠다. 이 여인은 진나라 가충의 딸로 작은 키에 피부가 검고 추한 용모를 지닌 여인이었으나 뇌물로 황후가 되었다. 성격 또한 황음 방자했고 투기가 몹시 심해 후궁들을 여럿 죽였으며 음탕하여 젊은 남자들을 정부로 삼았다. 가남풍은 자식이 없었는데 후궁이 낳은 사마휼이 세자가 되자 절굿공이로 때려죽일 정도로 악독하였다. 그러나 권불십년이라. 그녀의 악행은 10년 영화로 그치고 폐서인이 된 뒤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하지만 가남풍은 중국사에서 '빈계화'(牝鷄禍), 즉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인물로 평가되는 한편, 진나라 황실을 수호하려던 여걸로 기록되기도 하였다. 부처님 살 찌우고 안 찌우고는 석수장이 손에 달렸든가. 역사의 최종은 후대 어느 역사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뭇 저렇게 달라진다. 하기야 어디 역사뿐이랴. 사람에 대한 품평도 제각각이니 각설하고 장례에 대한 '장론'을 본다.

“장론: 오직 풍수지리설은 부처나 노장 사상보다 폐해가 심하다. 사대부들 사이에 고루한 풍습이 되어 개장(改葬, 다시 장사지내거나 묘를 옮김)을 효로 삼고 치산(治山, 산소를 매만져 다듬음)을 일로 삼는다. 백성들도 이를 본받아 지관(地官, 풍수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선생의 <북학의> 내외편 중 가장 탁견을 꼽으라면 '장론'이 아닐까 한다. 지금도 대통령 국장에 지관이 등장하는가 하면 청와대 비서관 건물을 짓는 데도 풍수지리를 따졌다는 기사도 보았다. 요즈음은 화장이 대세지만 아직도 돈과 벼슬깨나 지낸 이들은 매장을 선호한다. 지관을 먼저 찾고 풍수지리 인테리어니, 풍수지리 가구 배치니 운운한다. 현재의 습속이 이러한데 당시는 어떠했겠는가? 그야말로 선생 말대로 풍수설(風水說)이 낳은 폐해가 당시 이단으로 취급받아 배척되던 부처나 노장 사상보다도 심할 때였다. 오죽하였으면 '방내지리지설(房內地理之說, 방 안에 앉아서 풍수지리를 본다는 뜻으로 비현실적이고 비실제인 언행을 비유하는 말)'이란 말이 돌았을까. 일의 실상은 잘 모르면서 이론만으로 아는 체하는 사람을 '방안풍수'라 하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이 고루한 습속은 주거 터는 물론이고 조상 묘 개장 문제까지 확대되며 전국 각지에서 산송(山訟, 묘지 문제로 생기는 송사)이 일어났다. 선생은 전라도에서는 열 중 여덟아홉 명은 지관이라고 꼬집기도 하였다.

선생의 장론은 (6)회에서 계속 이어진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