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가 코로나 여파로 불황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단기간의 침체도 없이 성장을 거듭해온 경마산업이지만 이번에는 어려운 상대를 만난 것 같다. 매출이 줄자 마사회 등은 온라인 마권 발매를 위한 입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것이 받아들여지면 경마 일상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 국회는 지난달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도박심리 확산이 우려된다며 관련 법안을 보류시켰다.

이 기회에 경마를 비롯해 경륜·경정사업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사행산업이다. 사행산업의 사전적 의미는 '이용자로부터 금품을 모아 우연의 결과에 의해 특정인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고 다른 참가자에게 손실을 주는 산업'이다. 말은 복잡하지만 비정상적이라는 의미다.

흔히 사행산업 하면 카지노를 떠올리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경마가 원조다. 경마를 주관하는 한국마사회는 1949년 설립됐다. 보릿고개로 고생하던 시절에도 경마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개 결과가 좋지 않다. 재산을 탕진하고 가정이 파탄난 경우가 부지기수다. 수년 전에는 시흥에서 경마로 전재산을 잃은 가장이 부인 및 자녀 2명과 동반자살한 사건이 빚어졌다.

경마를 적당히 즐기면 건전한 레저라는 주장이 있지만, 중독자 대부분은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일단 중독이 되면 길은 정해져 있다. 파멸로 가는 시간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게 사행성 경기의 특징이자 결론이다. 구조를 파악해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경마·경륜·경정의 환급률은 72% 안팎이다. 쉽게 말해 100만원을 걸면 72만원만 돌려받는다. 귀신이 와도 돈을 딸 수 없게끔 돼있다. 경마를 해서 부자가 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 경마산업은 경마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눈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마·경륜·경정을 주관하는 단체가 공공기관이라는 점이다. 마사회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공기업이며, 경륜·경정사업 운영 주체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 시민들에게 가정파탄을 일으킬 수 있는 사행성 경기에 공공기관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국가가 개입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를 입증하듯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출신이 마사회장 등으로 가는 것은 오래 전부터 공식화돼 있다. 김우남 마사회장은 민주당 3선 의원 출신이고, 이재욱 전 농림부 차관은 지난 17일 마사회 감사에 임명됐다. 이런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지 난감하다. 외국에도 이런 경우가 있는지 검색해 봤지만 찾지 못했다. 경마·경륜·경정사업을 민간으로 이양하든지, 아니면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