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극한으로 내모는 '보이지 않는 손'
▲ 영화 '로제타' 중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진 로제타의 모습.
▲ 영화 '로제타' 중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절망에 빠진 로제타의 모습.

“안돼요! 계속 일할래요.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어!”

십대 소녀 로제타는 죽자 살자 밀가루 포대를 끌어안고서 절규하듯 부르짖는다. 실직한 뒤 어렵사리 취직한 와플 공장에서도 3일 만에 해고당하자, 그녀는 결사적으로 버티며 일터에 남으려고 발악한다. 절대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다는 절박함으로…

영화 '로제타'(1999)는 알코올 중독자 엄마와 함께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이동식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소녀 로제타의 비참한 삶을 처절하게 담아낸 벨기에 거장 감독 다르덴 형제의 대표작이다. 감독은 핸드헬드 촬영기법으로 현장감과 사실감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소녀의 극한의 처절함을 롱테이크 화면에 담아낸 엔딩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을 적시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청년실업문제를 고발한 이 영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받음으로써 소위 '로제타 플랜'이라는 청년의무고용제도의 제정을 촉발시키기도 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폐해 고발

문을 황급히 열어젖히고 씩씩거리며 복도를 걸어가는 공장작업복의 한 소녀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바짝 쫓는다. 공장 작업장으로 들이닥친 그녀가 바삐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로 뛰어들자, 사장이 급히 그녀의 앞길을 막아선다. 소녀는 수습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해고를 통보한 사장에게 막무가내로 달려들며 작업장에서 끝까지 버티려 한다. 결국 경찰들에 의해 공장에서 쫓겨난 소녀는 와플로 굶주린 배를 채우며 세상의 비정함을 맛본다. 로제타의 실직으로 오프닝을 연 영화는 다른 이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던 한 소녀의 생존 투쟁을 다큐적인 기법으로 담아냄으로써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해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18세기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유로운 경쟁시장에 맡겨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좇아 자유롭게 돈 벌도록 하라”고 주장하면서 신의 섭리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를 저절로 발전시켜 모두가 잘 살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그의 자유방임주의가 도입된 이래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오늘날까지도 심각한 구조적 병폐를 야기하고 있다. 불공평한 분배로 인한 빈부격차, 계급분화와 착취, 주기적 불황과 실업, 환경파괴 등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해는 갈수록 인간들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로제타도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치열한 경쟁과 반복되는 실직에 내몰리고 대를 이어 이어지는 빈곤과 불행을 홀로 헤쳐 나가야 하는 비참한 운명에 내던져진다. 자신의 인생을 운명 짓는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는 짐작도 하지 못한 채, 그녀는 애먼 '보이는 손'들에게 반항하고 불신하고 적대시하며 경쟁심을 갖는다. 와플 반죽하는 일자리도 잃은 후 절박해진 로제타는 급기야 자신을 친구로 대해준 와플가게 점원 리케를 배신하고 그 자리를 꿰차는 비열함마저 보인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인간들을 이익과 경쟁을 좇도록 부추기며 인간성마저 황폐화시킨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엄마를 통해 자신의 미래의 암담함을 본 로제타는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붙잡았던 생존의 끈을 놓아버리려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선택권마저 그녀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이제 그녀는 돈과 교환한 가스통을 힘겹게 들고서 생존이 아닌 죽음을 위한 고투를 벌인다. 그런데 이때 리케가 다가와 절망으로 주저앉은 로제타를 일으켜준다. 동감과 연대의 '보이는 손'으로…

“자본주의는 난공불락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자본주의가 반드시 우리의 미래일 필요는 없다.” 사회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는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연대하는 새로운 세상, 곧 '리얼 유토피아'를 곪아 썩고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즉, 기본적인 생활보장을 통해 생존을 넘어서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현실적 이상향 말이다. 그가 안내하는 길은 어원적으로 '좋은 영혼'이라는 뜻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개념 '에우다이모니아(eudaemonia)'를 향한다. 이제 우리는 '가치 있는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인생의 참된 의미를 되씹어 볼 때이다.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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