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이문일 논설위원

화교(華僑)는 중국 본토 이외 국가에 살고 있는 중국계 사람들을 가리킨다. '화(華)'는 중국을, '교(僑)'는 타국에서의 거주를 의미한다. 화교와 구별해 화인(華人)으로 부르기도 한다. 혈통만으론 중국인이 맞다. 해외에 사는 중국인 또는 그 자손들은 전 세계에 1억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화교 사회는 대부분 집단을 이루는 특성을 지닌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활발히 상업활동을 벌이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중국문화를 지킨다.

화교들은 타국에서 거대한 '번영'을 일궈냈다.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하면서 나름대로 부를 축적하고 있다. 화교들은 대개 유통·금융을 중심으로 경제 분야에 진출해 거주국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이민 집단인 화교의 역사는 19~20세기에 본격화해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처음 화교라고 부를 수 있는 집단은 언제 생겨났을까. 공식적으론 고종19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정부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면서부터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청국군과 함께 상인 40여명이 국내에 들어왔는데, 이들이 바로 '인천 화교'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인천에서 상업활동을 할 수 있는 권한과 거주지를 확보해 살았다. 이렇게 인천의 화교 역사가 출발한 지 올해로 140년째다.

화교들이 인천에 미친 영향은 아주 컸다. 중국요리와 더불어 국내 처음으로 짜장면을 선보인 일은 물론, 특유의 상술을 펴서 유명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에서 재배하는 채소류의 씨앗은 이들 화교가 독점하다시피했다. 소싯적 화교들과 한동네에 살았는데, 이들이 정말 부지런히 일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고향을 떠나 이민족 삶에 동화하려는 그들의 융화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인천중구시설관리공단이 짜장면박물관 10주년과 화교 140주년을 맞아 12월31일까지 짜장면박물관에서 기획전시를 진행한다. 각각의 직업군이 사용했던 도구와 유물 등도 보이고, 일제 강점기 일본에 핍박을 받던 역사도 직업별로 설명한다. 중구 차이나타운과 경동을 중심으로 한 생활상 역시 주목할 만하다. '싼바다오와 화교 140년의 기록' 전시에선 초대형 '선세도(先世圖)'가 눈길을 끈다.

싼바다오(三把刀)란 화교들이 인천에서 경제생활을 위해 주로 했던 이발사·요리사·재단사 등 3가지 직업을 통칭한다. 선세도는 1850년~1900년대 조상들의 초상화(196명)를 한폭에 담아 제사를 지내기 위한 용도의 그림. 화교에게선 무엇보다 '본디 뿌리를 잊지 말자'는 가르침을 눈여겨 봐야 할 듯하다. 어떤 국적으로 어디에 살든, 중국인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본받을 만한 얘기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