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자는 낮고 궂은 데로 흐르는 겸양 지녀야
▲ 若(같을 약)은 풀(_)이 돌(石)을 뚫는 지혜라 하여 若(반야 야)로도 읽는다. /그림=소헌

계절은 하지夏至를 지나 소서小暑로 접어들고 있다. 이에 맞추어 여지없이 장마가 찾아왔다. ‘장마는 이동성고기압으로 인해...’ 어쩌고저쩌고하는데, 철없을 때는 ‘이구동성’으로 들었다. 입은 다르나 목소리는 같다는 그 異口同聲. 많은 비가 한결같이 떨어지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장마비(된장 맛 나는 ‘장맛비’는 그르다)가 그치면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올 것이다.

비는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린다. 자연의 법칙은 위대하다. 老子는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인위人爲는 무위자연無爲自然한 도와 멀어지게 할 뿐이므로 오로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爲’란 의식적으로 꾸미는 행위이니, ‘無爲’란 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꾸미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부富와 권력이 어디에서 오는가? 남의 것을 빼앗거나 지배하는 데서 온다. 유가 사상이 예禮를 강조하며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지배계급의 처지를 말한다면, 도가 사상은 피지배계급의 처지에서 세상은 항상 변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노자 왈,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상선약수上善若水).”

심천도해(深川到海)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조선의 국시國是는 바로 나무와 물이었다. 나무는 인민을 가리키며 물은 국정철학을 뜻한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삶의 열매도 윤택하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물이 고르게 스며들어야 한다. 위정자는 타인을 이롭게 하면서 서로 자리를 다투지 않아야 하며, 물처럼 낮고 궂은 데로 흐르는 겸양을 지녀야 한다. 이것이 바른길이다(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도덕경>).

 

若 약/야 [같다. 만약(약) / 반야(야)]

①右(오른 우)는 오른손(_)에 물건(口)을 쥔(右) 모습이거나, 오른쪽에 물건을 둔 모양이다. ②만약(若약)에 왼손잡이가 약초(_초)를 오른손(右우)으로 딴다면 대박이다. ③풀(_초)이 돌(石석)을 뚫고서도 자라나는 것처럼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꿰뚫는 지혜를 반야般若라고 한다.

 

水 수 [물 / 액체 / 평평하다]

①水(수)는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본떴다. 부수로 쓸 경우에는 _/_(수)로 바뀐다. ②두 갈래로 흐르는 _(두 갈래 물줄기 추)와 물이 넓게 펼쳐진 _(아득할 묘)도 알아 두자. ③물(水)은_ 평준平準하고 공평公平하며 공정公正하다. _만일 평평하지 않으면 한쪽으로 치우쳐 흐를 뿐만 아니라 마침내 그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

 

이준석은 정의와 공정을 내세우며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되었다. 며칠 전 대통령출마를 선언한 윤석열은 공정과 상식으로 미래를 만들겠다고 하였으며, 이재명 역시 공정성을 확보하여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한다. 유승민은 공정소득을 기치로 내걸었고,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文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고 말했었다. 조금은 품격(?) 떨어진 표현으로 게나 고둥이나 어찌 公正(공평하고 올바름)을 입에 올릴까?

위정자들이 내세우는 공정(善)은 대가를 거두기 위한 위선僞善이며 책략일 뿐이다. 공정은 받는 자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대부분 민중은 남에게 선을 베풀 겨를도 없이 다만 서로의 괴로운 사정을 들어주기 급급하다. 어떤 이는 최고의 선함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공감이라고 했다. 가슴 아프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하라. 때로는 물이 불보다 혹독하다는 것을. 물이 차면 배는 저절로 떠오르게 될 터이니(水到船浮수도선부).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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