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원칙 없는 행정, 크나큰 민폐를 끼치다


1973년 5월 연안부두 개항 이후
산업항 배후부지로 쓰여야 할 곳에
1980년부터 아파트 준공 잇따르며
입주민들 환경 공해 관련 민원 늘어

화물 적하·적치량 예상 가능했지만
버젓이 건축 허가해 주민 피해 야기

'인천항사'의 '해운항만청-인천시 간
업무 협조 원활치 않아' 이유 비상식적

현재는 목재·고철·사료용 부원료 등
북항 이전 거치며 주민 불편 사라져
석탄부두도 머지않은 장래 옮길 계획
남항 일대 아파트 주민 이주도 논의
▲ 석탄부두는 남항 연안부두 끝단에 있다. 사진 좌측 하단 검은색 사각형 지대이다. 그로부터 13시 방향의 라이프아파트, 동쪽으로 연안아파트와 항운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향후 몇 년 내에 석탄부두의 이전 계획이 있다고 하지만, 1988년 석탄 전용 부두가 완공된 이후 날림먼지 등의 공해로 이들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의 대상이었다.
▲ 석탄부두는 남항 연안부두 끝단에 있다. 사진 좌측 하단 검은색 사각형 지대이다. 그로부터 13시 방향의 라이프아파트, 동쪽으로 연안아파트와 항운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향후 몇 년 내에 석탄부두의 이전 계획이 있다고 하지만, 1988년 석탄 전용 부두가 완공된 이후 날림먼지 등의 공해로 이들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의 대상이었다.

이 글의 제목에 대해 독자들이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왜 어쩔 수 없이 불편을 겪어야 하는가. 어쩔 수 없었다는, 실로 불평등하고 비합리적이고 강요적인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인천항이 있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불편을 부두 주변 인천시민들이 겪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불편이었다고 말하지만, 실상 당사자들에게는 감내하기 힘든 희생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들에게 불편을 강요하고 희생을 감내케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연안동과 항동, 북성동 등 항만 관련 시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해변 지역의 공해 문제도 심각하다. 바다모래나 목재를 부리는 하치장과 9군데의 석탄 야적장, 40여 개의 선박_철물공장 등이 들어서 있는 연안동과 항동 연안부두 지역의 경우 이들 공장과 각종 차량에서 내뿜는 먼지와 소음 등으로 주변 라이프_연안_항운아파트와 상가에 살고 있는 3000여 가구 1만여 주민들이 만성적인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항만 관련 시설들은 업무상 바닷가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데다 이전하려 해도 마땅한 부지를 확보키 어려워 민원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탓으로 중구 지역은 땅값 상승률이 다른 구보다 8∼13%가량 낮아 주민들마저 계속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1991년 7월13일자 조선일보 기사인데 당시 부두 근처 주민들의 불편, 피해 상황을 알 수 있다. 해사(海沙)나, 목재, 석탄 같은 공해성 화물의 하역, 적치가 주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라이프, 연안, 항운아파트 거주 1만여 주민들이었다.

이들 아파트 인근에 “바다모래나 목재를 부리는 하치장과 9군데의 석탄 야적장, 40여 개의 선박 철물공장”이 들어서 있는 상태였으니 주민 불편은 당연했으리라는 점이다. 거기에 극심한 차량 공해까지 더했으니….

신문은 “이들 항만 관련 시설들은 업무상 바닷가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데다 이전하려 해도 마땅한 부지를 확보키 어려워 민원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무척 딱하고, 답답해하고 있는 것이다.

▲ 석탄부두의 먼지 차단을 위해 설치한 방진 담장. 항만공사에서 시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새롭게 설치한 펜스 모습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 석탄부두의 먼지 차단을 위해 설치한 방진 담장. 항만공사에서 시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새롭게 설치한 펜스 모습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 남항 해사부두 모래 하치장의 작업 광경이다. 해사는 필요한 건축자재이지만, 환경 문제, 도로상에 흘림 등으로 문제가 되어 왔다./사진제공=한국항만연수원인천연수원
▲ 남항 해사부두 모래 하치장의 작업 광경이다. 해사는 필요한 건축자재이지만, 환경 문제, 도로상에 흘림 등으로 문제가 되어 왔다./사진제공=한국항만연수원인천연수원
▲ 소음과 날림먼지로 인근 주민들이 겪는 피해를 없애기 위해 2013년부터 내항 내 목재 하역작업이 전면 금지되었다. 이후 목재 하역은 북항에서 이루어진다. 북항 목재부두 저목장에 야적된 원목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 소음과 날림먼지로 인근 주민들이 겪는 피해를 없애기 위해 2013년부터 내항 내 목재 하역작업이 전면 금지되었다. 이후 목재 하역은 북항에서 이루어진다. 북항 목재부두 저목장에 야적된 원목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그러나 이 대목을 읽으면서는, 그렇다면 어째서 여러 세대의 시민이 거주하는 아파트 인근에 이 같은 골치 아픈 화물들을 하치, 야적하는 장소를 두어 민원을 발생케 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 기사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혹 다 지나간 일을 되짚어 문제 삼은들 소용이 없을뿐더러, 대체 부지가 없는 마당에 새삼 논쟁을 벌여 보았자 불필요한 공론으로 그치고 말리라는 생각에서였을까. 결국 골치 아픈 현실만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리고 만 셈이다.

신문은 핵심을 피해갔지만, 문제는 이들 세 아파트가 애초부터 여기에 입지를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진정 서해 바다 풍광을 즐기기 위해 안락한 아파트 신축이 절실했다면 다른 한적한 바닷가에 지었어야 했다는 말이다.

연안부두는 인천항 내항 전면 도크화 공사가 끝나기 1년 전인 1973년 5월1일에 개항했다. 그리고 그 6년 반 뒤인 1980년 1월에 1차 라이프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1981년 10월에 2차, 1990년 6월에 3차 아파트가 연달아 준공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항만에서의 부가가치 활동 수요가 증가하면서 항만 배후 부지가 점점 많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도시의 발전에 따라 도시 용지 부족으로 항만 배후 지역에 아파트 등 도시 시설이 들어서면서 항만 기능과 도시 기능이 상충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충 문제는 인천항의 관리 주체인 해운항만청과 배후 도시의 관리 주체인 인천광역시의 관리 주체 간 업무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이후 인천항의 항만 배후 산업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였다.


이 글은 이미 전에 인용한 바 있거니와 2008년에 발간된 '인천항사'의 내용이다. 한 마디로 항만 배후 부지도 필요한 판에 도시 용지도 필요했기 때문에, 산업항의 배후 부지로 쓰여야 할 곳에 시민 거주 아파트를 건설해서 마침내 '상충'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연안부두 개항 6년 반의 시간이 흐른 뒤라면, 산업항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배후 부지와 각종 민원 야기 화물의 적하, 적치량에 대해 충분한 예상이 가능했을 터인데도 버젓이 아파트를 들어서게 해 민원을 야기한 것이다.

이 결과를 '인천항사'는 당시 '해운항만청과 인천광역시의 업무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서'라고 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비상식적인 해명이 어디 있는가. 차라리 그 당시 당국자들이 앞뒤 생각 없이 정말 무지했다거나, 아니면 그 시대 어떤 권력이 억지로 밀어붙였던 것이라거나 하는 것이….

그리고 이런 일은 거기서만 그친 것이 아니다. 1983년과 1985년에 항운아파트와 연안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역시 어쩔 수 없이 주민들은 환경 공해에 시달리는 비슷한 운명의 길을 걸어 왔던 것이다.

앞서 인용한 조선일보는 연안부두 일대의 석탄부두, 목재부두, 모래부두로 인한 남항 인근 아파트, 상가 주민들의 불편만을 적시했는데, 또 한 군데 인천항 8부두, 고철부두 인근의 북성동 지역 주민들은 고철 하역시의 소음과 먼지로, 또는 운송 도중 도로상 낙철(落鐵)로 크게 불편을 겪기도 했다.

▲ 인천항 8부두 고철부두의 공해 문제를 보도한 1993년 4월3일자 동아일보의 보도 기사. 지금은 북항에 고철부두가 마련되어 예전의 중구 북성동·중앙동·송월동 등지의 주민 민원이 해결되었지만, 1985년 부두 완공 이래 소음과 먼지로 주민 피해가 컸었다./사진제공=동아닷컴
▲ 인천항 8부두 고철부두의 공해 문제를 보도한 1993년 4월3일자 동아일보의 보도 기사. 지금은 북항에 고철부두가 마련되어 예전의 중구 북성동·중앙동·송월동 등지의 주민 민원이 해결되었지만, 1985년 부두 완공 이래 소음과 먼지로 주민 피해가 컸었다./사진제공=동아닷컴

 


인천지방해운항만청은 10일 고철 전용 부두인 8부두에서 고철 하역과 외부 운송 때 발생하는 먼지와 소음이 인근 중구 북성동 1000여 가구 4000여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음에 따라 8부두의 이전을 중앙에 건의키로 했다고 밝혔다.


1993년 7월11일, 지금은 먼 기억의 이야기가 되고 만 기사 내용이지만, 특히 여름철에 창문도 제대로 열 수 없었던 주민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철 수입은 국가 산업을 위해 필요한 물자이고, 국가 산업 발전은 국민 민복(民福)을 위한 것인데, 일부 국민은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당하고 있던 이 모순은 과연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 인천항 날림먼지 저감을 위해 내항에 설치된 에코 호퍼(Echo Hopper)의 모습. 곡물, 모래, 자갈 등을 좁은 구멍을 통해 아래로 떨어뜨릴 때 사용하는 깔때기 모양의 용기로 친환경 하역 장비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 인천항 날림먼지 저감을 위해 내항에 설치된 에코 호퍼(Echo Hopper)의 모습. 곡물, 모래, 자갈 등을 좁은 구멍을 통해 아래로 떨어뜨릴 때 사용하는 깔때기 모양의 용기로 친환경 하역 장비이다./사진제공=인천항만공사

오늘날 목재, 고철, 사료용 부원료 등 민원성 화물은 북항으로 이전해 전과 같은 주민 불편은 사라졌다. 연안부두 끝단에 위치한 석탄부두도 머지않은 장래에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남항 일대 아파트 주민 이주 문제도 논의가 이루어지는 듯하다.

묻어 두어도 좋을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것은, 매사 치밀한 계획과 원칙 있는 진행, 운영을 생각하자는 뜻이다. 그렇지 못하면 하나의 삽화(揷話)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주민들에게 불편과 피해를 씌우는 끝없는 진행형의 우(愚)가 된다는 사실이다.

/김윤식 시인·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